사랑
두 여자의 순애보 ‘비러브드’ 사랑 찾는 ‘남자사용설명서’ 상처 보듬는 ‘실버라이닝…’
망상으로 때론 운명적으로… 정답이 없기에 애달픈 과정 사랑은 그래서 모두 다르다
극장가에서 연례행사처럼 로맨스영화가 쏟아지는 때가 있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전후한 겨울 극장가다. 인류와 함께 시작했고, 해 아래 새로울 것 없는 러브스토리가 뭇 남녀 관객들을 유혹하는 계절이다. 이 사랑타령이란 것이, 그 진미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별 다를 것 없는 내용물이 매년 포장지만 바뀌어 나오는 것 같지만, 좀 먹어봤다는 이들에겐 달콤 쌉싸래한 맛이 어느 하나 똑같을 수 없는 초콜릿을 닮았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 뮤지컬 영화 ‘비러브드’(감독 크리스토프 오노레)는 단맛과 쓴맛이 가장 강렬하게 입안을 채우고, 길게 여운을 남기는 유럽산의 순도 높은 명품 수제 초콜릿이라 할 것이다. 안정이냐 열정이냐, 결혼이냐 연애냐, 자유냐 구속이냐, 육체냐 정신이냐, 사랑할 것인가 사랑받을 것인가. ‘비러브드’는 사랑의 다양한 테마들을 때론 감미롭고 때론 애잔한 샹송으로 변주한다.
이 작품의 중심에 놓인 것은 두 여자의 사랑이다. 1960년대 중반, 여성이라면 오드리 헵번처럼 옷을 입고 재클린 케네디처럼 멋을 낸 파리. 화려한 여성 구둣가게에서 점원으로 근무하던 가난한 마들렌(카트린 드뇌브 분)은 퇴근길에 명품 구두 ‘로저 비비에르’ 한 켤레를 훔쳐 가던 중 창부로 오인받아 꽤 큰돈을 제시하는 낯모를 남자와 침대에 눕게 된다.
그렇게 거리의 여자가 된 마들렌은 자신의 손님 중 한 명이었던 체코 의사 ‘자호밀’과 사랑에 빠진다. 둘은 프라하로 가서 결혼해 딸도 낳지만 남편의 외도와 소련의 체코 침공 때문에 헤어진다. 자식과 함께 파리로 돌아온 마들렌은 새 남편을 맞지만 때때로 자신을 찾아오는 자호밀과 밀회를 즐긴다. 마들렌의 딸 ‘베라’(키아라 마스트로야니 분)의 운명 역시 두 남자의 사랑 사이에 놓인다. 30대로 성장한 베라는 런던에서 미국인 의사 핸더슨을 만나 강렬한 매혹을 느끼지만 상대는 그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도 베라는 운명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지만 곁에서는 늘 자신을 열렬히 사랑하는 연하의 소설가 클레망(루이스 가렐 분)이 맴돈다.
1963년부터 2008년까지, 파리에서 프라하, 런던, 몬트리올까지 이어지는 두 여자의 사랑의 행로는 엇갈린 운명으로 끝난다. 하나의 사랑은 완벽한 이중주로 완성되고, 또 다른 하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이 영화에서 처음과 마지막, 구두점 역할을 하는 구두가 중요한 상징이다. 매일 신고 출근하는 편한 정장구두와 온 몸의 감각을 활짝 깨우고 열정을 불태우게 하는 화려한 슈즈 한 켤레.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등장인물들이 부르는 샹송 중 “당신 없이 살 수 있지만,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어요”라는 가사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시영과 오정세가 주연한 한국영화 ‘남자사용설명서’(감독 이원석)는 사랑을 찾기 위한 한 여인의 분투기를 코믹하게 엮었다. 영화감독의 꿈은 잊은 지 오래, 광고 조감독으로 현장에서 뒹굴며 어느새 남자들에겐 ‘비호감녀’가 된 주인공 ‘최보나’가 ‘연애의 기술’을 담은 비디오테이프 속 연애 코치를 따라 최고의 한류스타 ‘이승재’의 사랑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이들에게 사랑이란, ‘테크닉 없는 진심은 맹목이고, 진심 없는 테크닉은 공허하다’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종류의 관계다. 알록달록 원색으로 포장된 선물용 초콜릿, 달콤한 ‘캐러멜 팝콘’ 같은 로맨틱 코미디.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감독 데이비드 O.러셀)은 ‘멘붕’에 빠진 성인들을 위한 로맨틱 코미디다. 아내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 상대 남자를 죽도록 팬 후 정신병원에 있다 퇴원한 ‘팻’. 남편과 사별한 후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회사 모든 동료와 잠자리를 갖다 해고된 여인 ‘티파니’. 아내의 외도로 큰 상처를 받은 팻은 결혼과 정조에 대한 결벽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작은 거짓말조차 극도로 혐오한다. 누군가 자신을 속이려고 하고 있고, 타인이 자신을 공격하려 한다는 ‘피해망상’ 때문에 발작적으로 분노를 폭발시킨다. ‘분노조절 장애’다. 반면 티파니는 자신의 무관심과 ‘섹스리스’의 부부생활이 남편을 불의의 사고로 몰아갔다는 잘못된 자책으로 인해 무분별하게 육체관계에 집착했다. 남을 돕다 사망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타인에게 무조건적인 호의를 베풀려는 강박적인 태도로 나타난다.
정신분석학의 용어로 말하자면, 팻은 타인과 세상을 ‘불륜의 아내’로 ‘치환’하고, 과도한 집착과 분노성향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티파니에겐 자신이 만나는 모든 이들이 남편을 ‘대체’하는 존재이다. 증상은 다르지만 이들의 무의식 속엔 공통적으로 “내 잘못을 고치기만 하면 떠난 사랑을 되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헛된 망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새로운 사랑은 ‘힐링’이다. 다친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핫 초콜릿’같은 영화.
닳고 달은 게 러브스토리이지만 오늘도 사랑이 궁금한 뭇 남녀들은 극장으로 향한다. 과연 사랑은 기분에 따라 바꿔 신는 구두일까, 따라하기만 하면 이루어지는 매뉴얼일까, 너무 많이 복용해도 너무 적게 써도 문제인 치유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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