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봄 하면 떠오르는 첫 맛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냉이된장국보다 우선하는 봄의 맛을 떠올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구수한 된장냄새와 어우러진 알싸한 냉이 향만큼 직관적으로 봄을 확인시켜 주는 매개도 드물죠. 여기에 바지락이라도 몇 개 넣으면……. 냉이를 살짝 데쳐소금과 들기름으로 무쳐 먹어도 정말 맛있죠. 그 맛의 각별함을 표현하는 일은 김훈 작가의 장편소설 ‘남한산성’의 문장을 빌리지 않고는 어려울 듯합니다.

“언 땅에서 뽑아낸 냉이 뿌리는 통째로 씹으면 쌉쌀했고 국물에서는 해토머리의 흙냄새와 햇볕 냄새가 났다. 겨우내 묵은 몸속으로 냉이 국물은 체액처럼 퍼져서 창자의 맨 끝을 적셨다.”

<식물왕 정진영> 5. ‘냉이꽃’과 친해지면 봄은 더욱 다채로워 진다

겨울의 끝자락에 돋아나는 채소 중에는 유독 향기와 맛이 뛰어난 나물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냉이는 대표주자입니다. 누가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도 볕이 내리쬐는 곳에선 어김없이 냉이가 먹음직스럽게 자라고 있죠. 겨우내 혹한을 견뎌낸 녀석일수록 향이 더욱 짙습니다. 혹한은 냉이가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냉이는 제철이 봄이지만 과장을 보태면 한겨울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눈에 띕니다. 그 증거는 작은 다발로 하얗게 피어나는 꽃입니다.

냉이를 즐겨 먹어도 냉이가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군요.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이 드물다는 사실을 잘 아는데도 말이죠. 사실 냉이꽃은 봄이면 너무 흔해서 발에 밟힙니다. 게다가 꽃의 크기는 2~3㎜ 가량으로 작아서 바닥에 앉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생김새조차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친해지려면 땅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는 수고가 필요하죠. 하지만 그 수고로움을 견디면 그 꽃은 앞으로 그냥 ‘꽃’이 아니라 ‘냉이꽃’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봄이면 흔히 먹는 식재료가 이렇게 무시로 앙증맞은 꽃을 피운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이름을 알고 나니 한결 더 냉이와 가까워진 것 같지 않은가요?

냉이의 꽃말은 “봄색시, 당신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입니다. ‘체액처럼 퍼져서 창자의 맨 끝을 적시는’ 냉이된장국의 맛을 떠올리면 참으로 냉이다운 꽃말입니다. 올 봄에는 길가에서 냉이꽃과 친해져 보시죠. 냉이와 친해지면 더 많은 들꽃들과 친해질 수 있답니다. 냉이 옆에 함께 피어있는 들꽃들이 정말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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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왕 정진영> 5. ‘냉이꽃’과 친해지면 봄은 더욱 다채로워 진다

사진 설명 : 냉이꽃. 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