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손으로 선택된 대한민국의 지존이지만 국민의 뜻 거스를수 없는 대통령…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5년간의 외로운 줄타기

청와대의 대통령 문양은 봉황(鳳凰)이다. 동아시아에서 봉황은 제왕(帝王)의 상징이다. ‘대통령=봉황=제왕’의 등식이 성립할 법도 하다. 하지만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이 사실을 모두가 알지만, 또한 모두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87년 이후 치러진 6차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은 대통령에게 ‘거의 모든 것’을 원했다. 후보들은 저마다 거의 모든 것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까지 이 약속을 지킨 이는 없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국민행복’을 약속했고, 당선됐다. 과연 박 대통령 당선인이 개인의 행복, 가정의 행복, 사회의 행복, 대한민국의 행복을 가져올 수 있을까?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대통령들의 처지가 꼬였던 이유는 국민과 대통령 본인 모두 대통령과 제왕의 차이를 인정치 않은 데서 출발했다. 사실 오늘날 대통령의 권한은 옛 제왕과 엇비슷하다. 얼핏 제왕이 모든 일을 제 맘대로 한 것처럼 여길 수 있지만, 삼권분립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선시대 왕은 여러 경로를 통해 권력을 견제받았다. 그러니 대통령과 왕이 가진 권력만 비교한다면 닮은꼴이라 할 만하다. 이러다 보니 국민들은 세종대왕, 정조 같은 왕정시대의 정치를 마치 이상향이라 여기고, 이를 대통령에 요구한다. 그런데 이는 임기와 선거라는 대통령과 제왕의 차이를 간과한 결과다. 선거를 치러야 하고 제한된 임기밖에 없는 대통령에게 선거 부담도 없고 임기 제한도 없는 왕의 정치를 바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국민들은 대통령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조건인데도 이를 바랐고, 대통령들은 막강한 권력을 갖다 보니 마치 제한된 임기 내에 모든 걸 할 수 있는 양 착각하다 용두사미로 끝나는 셈이다.

황상민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장은 “현실정치에 대한 실망은 국민들로 하여금 이상적 정치가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하고, 그래서 이상적 정치가라고 여겨지는 이를 선택하는데, 이는 다시 현실정치에 대해 실망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은 정치에서 장밋빛 희망을 원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우리 모두가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만인 위에 군림할 것 같지만, 5년 임기 내내 대통령의 운신 폭은 좁다. 남북관계는 유엔의 대북제재에 걸리고, 경제는 글로벌 경제시스템과 맞물려 움직여야 한다.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대기업 규제? 당장 ‘기업 하기 나쁜 나라’로 국제신용평가사가 낙인찍으면 국가신용등급이 급추락하고 외국인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국내사회는 한쪽이 이익을 보면 한쪽은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 한 치 양보가 없는 ‘투쟁의 담장’ 위를 대통령은 걸어야 하는 운명이다.

반복된 실패를 겪다 정치권에서 해결책으로 착안한 게 바로 4년 중임제다. 5년이라는 임기제한 탓에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중임제도 4년 단위의 선거와 임기라는 통제장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근본적으로는 국민의 대통령에 대한 기대 크기를 줄이고, 대통령도 임기 내 과도한 업적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가뜩이나 정치권에서 현재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크다고 난리들인데, 기대와 욕심의 ‘거품 제거’가 없다면 앞뒤가 안 맞는다. 적게 주고 많이 하라는 억지가 된다.

함성득 고려대 교수(대통령학)는 “‘성공한 대통령 되기 패러다임’에 사로잡히지 말고, 정치적 위험이 적고 자원과 시간이 적게 소요되는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작은 성공(Small Win)’을 많이 산출해야 한다”면서 “즉 ‘실패한 대통령이 되지 않기 패러다임’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2년 앞이 아닌, 5~10년을 바라봐야 할 장기적인 국가 프로젝트, 정권이 바뀌고 대통령이 바뀌어도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할 일들은 계승해서 지속 추진하려면 정치권의 합의와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필요한 게 ‘대통령의 정치학’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자주 국회를 찾아 연설하는 이유도 결국 정책에 대통령의 힘이 아니라 국민의 힘을 실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대통령의 리더십은 ‘설득의 힘’이란 말이 있다”며 “리더십은 정치지도자와 국민, 그리고 정치적 반대자 간의 타협점을 찾도록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홍길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