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마니’
‘추억의 마니’
애니메이션의 명가 스튜디오 지브리가 ‘추억의 마니’(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로 돌아왔습니다. 기다리던 지브리의 신작을 마주하는 심경은 반가운 한편 착잡합니다. 지브리의 마지막 작품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지난 해 6월, 신작을 더이상 만들지 않는다고 선언한 지브리는 제작 부문을 해체하고 잠정 휴업에 들어갔습니다. 지브리 애니메이터들이 언제쯤 펜을 다시 들 지는 기약이 없습니다. 어쩌면 스튜디오의 문은 영영 열리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보니 ‘추억의 마니’는 지브리가 보내는 마지막 선물처럼 더욱 애잔하게 다가옵니다.
12살 소녀 안나는 요양 차 방문한 시골마을에서 신비로운 대저택을 발견합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저택에 발을 들인 안나는, 그곳에서 아름다운 금발 소녀 마니를 만납니다. 다음 날 안나는 다시 그 곳을 찾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만 덩그러니 있을 뿐입니다. 이후에도 마니는 홀연히 안나의 앞에 나타납니다. 안나는 마니와의 만남을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녀의 정체에 의문을 품습니다.
‘추억의 마니’는 한 소녀(안나)의 성장기를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구성에 담았습니다. 장르로 따지자면 미스터리 판타지 애니메이션 쯤이 될까요. 안나는 세상을 떠난 부모에 대한 원망과 새 엄마에 대한 배신감으로 세상과 단절한 채 지냅니다. 마니 역시 아픈 사연을 가졌지만, 안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를 극복합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이들을 무조건 원망하고 미워하기 보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감싸안으려 합니다. 그런 마니를 만나면서 적대감과 미움의 말이 머물던 안나의 입에서 ‘용서’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자기혐오에 시달리던 안나의 상처도 차츰 치유되어 갑니다. 두 소녀의 자매애와 성장담은 관객들을 흐뭇하게도, 때로는 뭉클하게도 합니다.
지브리표 애니메이션답게 시·청각적 요소도 감성을 자극합니다. 자연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요네바야시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 애정을 유감없이 발휘하죠. 고즈넉한 바닷가 마을의 풍광은 지브리 특유의 수채화 터치로 표현돼 영화 팬들의 향수를 더합니다.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하늘색과 바다색, 물이 차고 빠지는 데 따라 달라지는 습지는 실사 이상의 감흥을 주죠. 프리실라 안의 엔딩곡은 9년 전 곡인데도, 맞춤곡처럼 영화 전반의 정서와 어우러집니다. 이처럼 눈과 귀가 즐거운 100여 분은, 지브리 휴업의 상실감을 잠시나마 잊게 합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추억의 마니’를 통해 지브리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지난 30여년 간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의 동심마저 일깨웠던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추억의 마니’를 끝으로 ‘추억의 지브리’가 되지 않기 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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