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등산을 좋아하셨는데, 산에 올라갈 때마다 비닐봉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담배꽁초 같은 것이 눈에 띄면 다 주우셨어요. 운전할 때는 답답할 정도로 양보를 많이 하셨고,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셨죠.”

고(故) 신동우 화백의 아들 신찬섭(49) 제일기획 캠페인 팀장.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거절도 못하는 성격이었다. 사람 좋아하고 잘 믿는 탓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풍운아 홍길동’이 대성공을 거두며 만화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안좋게 이용을 당하기도 했다.

사부곡((思夫曲)에서 아들의 추억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 신 화백은 유독 법을 잘 지키고 정도를 걷는 것을 중시하는 모습이었다. 운전을 하고 있는데, 앞의 관광버스에서 쓰레기 버리는 모습을 보고 버스를 앞질러 세운 적도 있었다는 일화는 그의 성격을 대변한다. 신 화백은 좋아하는 것에는 전문가 못잖게 몰두하고 공부했다. 클래식 음악을 특히 좋아했던 그는 모차르트와 하이든에 대해서는 전문 음악가가 탐낼 정도의 지식을 갖췄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식들에게 클래식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줬고, 노래와 기타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윤형주, 이장희를 비롯한 가수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음악과 여행을 사랑했던 그는 가족여행을 참 많이 다녔다. 가족여행을 할 때는 항상 그 테마에 맞춰 이야기거리들을 가져왔고, 여행 테마에 맞는 음악들을 카세트 테이프에 담아 왔다. 여행을 하다가 경치가 좋거나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곧바로 그림을 그리곤 했다. 신 화백이 즉석에서 그림을 그리는 현장에는 항상 인파가 모였고, 순식간에 그려내는 모습에 사람들은 감탄을 자아내곤 했다.

신 화백의 자식 사랑은 남달랐다. 딸에 이어 아들까지 아이가 둘이 되자 좁은 집에서 마당이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들은 뛰어놀 마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처음 세계일주를 했을 때는 당시 초등학생이던 딸과 아들 학교에 기증하려고 각 나라의 돈과 돌을 수집해오기도 했다. 기억력이 좋았던 그는 오래된 세세한 기억들도 자식들에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다정다감한 아버지였고, 해외 오케스트라가 한국에 오면 딸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자식들에게 크게 간섭하지 않는 아버지이기도 했다. 단 한번도 자식들에게 성적표를 보자고 한 적이 없었고, 매를 든 적도 없다. 가끔 화를 내긴 했지만, 큰 실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전구를 갈지 않은 것’ 같은 사소한 실수에 대해서만 간혹 혼을 내곤 했다.

“돈 욕심이 특히 없으셨어요. 돈벌이를 위해 만화를 시작했지만, 수많은 작품 및 방송 활동으로 항상 일이 넘쳐날 정도로 많다 보니 한달에 딱 필요한 돈만 벌고 쉬엄쉬엄 일했고, 이에 어머니는 첨엔 좀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나봐요.”

이 때문에 1994년 돌연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들은 적지 않게 당황하기도 했다. 술과 담배를 즐겨했던 신 화백은 기관지가 좋지 않았고,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을 앓고 있었다. 1994년 11월 혼자 자던 신 화백은 갑작스런 호흡 곤란으로 짧은 생을 마감, 한국 문화예술계에 큰 슬픔을 안겼다. 한 시대의 ‘낭만’은 그렇게 애도 속에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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