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평범한 서민들에게 세상은 ‘이상한 나라’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건 옛말.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해선 강남 8학군 출신을 따라잡지 못한다. 죽기살기로 공부해 대학 문턱을 밟아도, 그 문을 나설 땐 비정규직 인생이다. 그야말로 개처럼 벌어도 내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렵다. 성실하게 사는 것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 쯤은 이제 누구나 안다.

‘수남’(이정현 분)도 사회에 나설 땐 꿈 많은 엘리트였다. 성실하게 일해도 집 값이 뛰는 속도는 따라잡을 수 없고, 투잡·쓰리잡을 해도 빚만 늘어간다. 그 와중에 그녀의 행복을 방해하는 일까지 자꾸 벌어진다. 수남은 울먹이며 토로한다. “열심히 살면 행복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수남의 파란만장한 생존기를 다룬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제작 KAFA FILMS)는 신예 안국진(35) 감독의 작품이다. 단편 두 편을 찍고 처음 내놓은 장편영화가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우연히 시나리오를 접한 박찬욱 감독이 “근래 읽어본 각본 중 최고”라고 평하면서 영화계의 이목이 쏠렸다. 그는 아직까지 극장 개봉도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이야 영화도 찍고 인터뷰도 하고 있지만, 그 전엔 직업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고 집 안에서만 갇혀 지냈어요. 저를 비롯한 젊은 세대에게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래!’라는 자기암시도 한계치에 달했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통해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웃으면서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의 시나리오를 인상적으로 본 배우 및 스태프들이 합류하면서, 저예산 독립영화로선 ‘어벤져스’급 팀이 꾸려졌다. 배우 이정현을 비롯해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약해 온 서영화, 명계남, 이준혁, 이대연, 이해영 등이 출연한다. ‘명량’의 제작팀과 후반작업팀도 가세했다. 일반 상업영화의 1/30 수준인 2억 원(현물 지원을 제외하면 7000만 원 수준)의 제작비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이들이 재능기부 형태로 작품에 참여한 덕분에 가능했다.

“이정현은 배우보다 가수의 이미지가 강했어요. 그러다 ‘파란만장’, ‘범죄소년’을 보고 놀랐어요. 연기만 계속 하면서 내공을 쌓아온 사람 같더라고요. 제가 배우의 기에 눌려 끌려 다니거나 욕 먹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죠.(웃음) 막상 같이 작업해 보니 소녀같기도 하고, 작품과 관련해 질문도 걱정도 많더라고요. 타고난 재능만큼이나 노력도 많이 하는구나 싶었죠.”

첫 장편 작업이었지만 다행히 시행착오는 크지 않았다. 베테랑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여유와 배려 덕분이었다. 모두가 열악할 수 밖에 없는 촬영 환경을 각오했기에 불평이 나올 수 없었다. 안 감독 역시 한정된 예산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도록 꼼꼼하게 촬영을 준비했다.

불안정한 생계, 집값, 재개발 등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다룬 이야기는 블랙코미디의 옷을 입고 한결 경쾌해졌다. 폭소와 냉소, 실소를 오가며, 통렬한 비판과 성찰을 이끌어내는 영화의 힘은 더 강해졌다.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이해해야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수남은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단지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예요. 그 무지함이 잘못은 아니잖아요. 사회 시스템은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변하는데,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불행해지는 현실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거겠죠.” [사진 제공=카라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