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극 연출을 국내 정서에 맞게 연출하는 감독으로 단연 이준익 감독을 먼저 떠올리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이 감독이 이번에는 '사도'로 돌아왔다. '사도'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을 그려낸 작품이다.
22일 영진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결과 '사도'(감독 이준익) 21일 전국 1146개의 상영관을 통해 15만 546개명의 관객을 모았다. 개봉 이후 누적관객수는 196만 1106명이다.
"상반기에 성적이 안좋았는데 '암살'이 포문을 열고 멋진 영화 '베테랑'이 기세를 이어가줬어요. '사도'가 그 몫을 다 받을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봐주시는 분들께 모두 감사드려요."
'사도'는 황산벌' '왕의 남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에 이은 이준익 감독의 다섯번 째 사극이다. 그 동안 영조나 사도세자, 정도를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가 많았기 때문에 이번 사도의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익숙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교과서에서 배우는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모두가 결말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준익 감독은 '사도'였다.
"전 사도세자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한건데 관객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는 뻔하다, 무슨 재미로 볼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엊그제 개봉했는데 호불호가 갈리더라고요. 좋아하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됐다, 반면에 다 알고 새로울 것도 없더라, 각각의 의견들이 있더라고요."
비단 왕과 세자의 관계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의 불편한 관계가 지금 이 사회에도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사도'가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낸 제 1순위는 메시지가 지닌 힘이 아닐까.
"왕과 세자 이야기지만 자유민주주의 시대에는 모든 가정의 아버지가 왕이죠. 자식이 세자고요. 평등사회가 왔기 때문에 특별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고 몰입해서 볼 수 있으실 것 같네요."
영화는 사도가 뒤주에 갇히기 하루 전날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이후 성인이 된 사도와 유년기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의 사도의 모습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사도가, 혹은 영조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가를 과거로 거슬러가 설명하는 것. 이 연출은 캐릭터들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쉽게 도와준다.
"교차편집이 몰입을 방해해 보기 불편하다고 느끼실 수 있어요. 편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몰입도를 증가시키고요.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연출한게 우리나라 최초입니다. 플래시백으로 회상신들을 가져왔던게 전부죠. 시나리오 쓸 때도 과연 이게 사업 영화로서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을까에 대한 염려가 컸어요. 그래서 시사회 할 때도 나 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이 모두 조마조마 했었어요. 어쨌든 다수의 관객들이 교차 편집으로 몰입도가 높아졌다고 이야기해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웃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영화는 없죠. 취향에 맞지 않으면 몰입이 안 될 수도 있어요. '사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관객들에게는 사과하고 싶습니다. 우리 집에 초대했는데 차려 놓은 음식을 맛있게 먹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잖아요. 저는 영화를 내놓을 때 만족하지 못하고 관객들이 돌아가면 감독으로서 뜨끔하더라고요.."
인터뷰 하는 내내 이준익 감독은 관객들의 반응에 대해서 꿰뚫고 있었다. 칭찬하는 글 뿐 아니라, 영화에 대해 비판하는 글에 대한 의견도 서스럼없이 밝혔다.
"댓글도 다 봐요. 다음에 개선하려면 봐야 하는 것 같아요. 비판 받는건 나쁜게 아니잖아요. 비난하는것이 안타까울 뿐인거죠. 명확한 비판은 오히려 고맙죠. 제가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니까요."
유아인은 '베테랑'에 이어 '사도'에서 울분에 가득 찬 사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현재 유아인은 어디에서나 '핫'한 배우. '사도'에서 사도세자의 옷을 제대로 입었다고 호평일색을 받고 있다. 이준익 감독은 유아인의 어떤 면을 보고 캐스팅에 나섰을까.
"'완득이' 때 연기하는 것을 봤는데 안에 불덩이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현실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불안이 꽉 차 있는 연기를 봤죠. 그 불안을 '사도' 때 터뜨려준 것이지요."
많은 관객들은 영화의 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옥추경의 강렬함이 '사도'의 긴장감을 한 껏 끌어올려주는 장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경객(經客)이 악귀를 쫓을 때 읽는 경문으로, 그 자체로서 영조와 사도의 비극을 몸 속 깊이 알린다.
"조상경이라고 조상한테 외우는 염불이고, 옥추경이라고 실제 있는 것들입니다. 긴장감을 조성해주죠. 사도의 누적된 분노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음악이었어요. 그 음악들은 작곡한게 아니라 천년이 넘은 음악들입니다. 영화를 보는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은 익숙하실 것 같아요. 젊은 관객들은 조금 낯설 수도 있겠고요."
베테랑과 베테랑들이 만났다. 이준익 감독과 송강호. 그들은 감독과 배우의 시선에서 벗어나 동료로서 조금 더 완성도 높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서로를 배려하고 믿었다. 이준익 감독은 현장에서 자세한 디렉팅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가 왜 배우들에게 사랑받는 감독인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우린 각자 알아서 합니다.(웃음) 디렉팅은 간섭 아닐까요? 열심히 하고 잘 해서 제가 디렉팅 할 게 없어요. 현장의 분위기를 잡는게 감독의 제 1업무인데 제가 인상 쓰고 있으면 다들 마음이 불편하잖아요. 제가 웃으면 다 웃습니다. 저의 현장은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았어요. 영화를 찍는다는 건 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서로 짜증을 내고 불편하면 항해를 잘 할 수 없겠죠."
'사도'를 보는 내내 불편함 감정을 느끼는 관객들이 심심치 않게 있을 것. 이준익 감독은 이 불편한 감정을 정면으로 봄으로써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마주한 순간, 스스로 치유할 수 있기를 의도했다. 누군가는 영조에, 또 다른 누군가는 사도, 혹은 혜경궁 홍씨, 정조에게 이입해 영화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도록 연출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강점이다. 영조와 사도에게만 치중하지 않고, 캐릭터의 시야를 넓힌 것. '사도'가 거친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을 보아하니, 그의 의도가 제대로 관통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극장에선 불 꺼놓고 영화를 틀면 도망 갈 수가 없잖아요. 보시는 분들이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건 당연합니다.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본다는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사람이에요.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아들, 영조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정조의 아버지, 불편한 감정들이 너무 많아요. 그걸 보면 관객들도 힘들 수 있어요. 저는 그 불편함을 정면으로 마주함으로 각자 안에서 느껴왔던 그 감정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봐요. '사도'는 불편한 순간을 더 불편하게 만들어버리죠. 그래서 비극에 이르렀고요. 우리는 영화를 엿보잖아요. 배우들이 카메라를 보고 연기하진 않으니까요. 그러던 중 극 캐릭터에게 느껴지는 유사 감정이 있어요. 유사 감정이 있으니 동화되고, 타인의 고통을 통해 일상 속에 있었던 나의 기억들이 치유될 수 있는거죠."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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