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되면 봐” 떳떳한 남친 vs. “기다릴게” 꿋꿋한 여친

[헤럴드경제=이지웅 기자] 올 초 육군에 입대한 박모(23)씨는 입대를 앞두고 1년여간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인연이 되면 제대 후에 보자”고 말했다.

“군 생활 내내 전전긍긍하기 싫었고, 괜히 여친의 발목을 잡는 짓은 하기 싫다”는 이유였다. 고민 끝에 결국 둘은 내후년쯤 다시 연락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박씨 커플처럼 군 입대에 쿨하게 대처하는 연인도 있지만, 꿋꿋이 기다림을 약속하는 연인도 있다.

현역 장병 여자친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곰신카페(고무신 카페의 줄임말)’는 2003년 개설됐다. 회원수가 50만명이 넘고 게시물은 130만건이 넘는다.

‘너 없는 하루(곰신일기)’ , ‘기다려 곰신(군화이야기)’, ‘흔들리는 곰신’ 등 게시판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 군 입대로 어쩔수 없이 떨어져 지내는 젊은 연인들의 애틋한 감정이 오롯이 담겨 있는 곳이다.

“남자친구 입대시킨 지 몇 주 안 된 곰신(고무신)이에요. 곰신이 이렇게 힘든 거였나요?”

지난 18일 이런 고민글이 올라오자 ‘선배 곰신’들의 댓글이 달렸다.

“저는 ‘나보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을텐데’하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 기다리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이런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기로 해요.”

이밖에도 ‘같은 학교라서 항상 남친이랑 둘이 있었는데 남친이 없으니 학교 생활이 너무 공허하다’는 등 솔직한 고민 토로들이 여럿 올라온다.

상병 남자친구를 두었다는 남모(21ㆍ여)씨는 “다들 같은 처지라서 서로 감정을 공유하면 조금은 위로가 된다”며 “군대에 대해 전혀 몰랐다가 이런저런 사연을 들으면 조금은 이해도 되고 휴가나온 남자친구를 배려하게 된다”고 했다.

물론 이별 사연도 공유된다.

‘곰신 거꾸로 신은 사연’에는 ‘전역 50일 남겨두고 자꾸 싸워서 기다린 게 아깝지만 헤어지기로 했다’는 글도 올라오지만, ‘그놈 군화 거꾸로 신다’에는 반대로 군인 남자친구가 이별을 통보했다는 글도 올라온다.

하지만 카페 대부분의 게시물은 씩씩하게 기다리는 여자친구들의 사연으로 북적인다.

남자친구 면회 때 싸가는 도시락을 사진 찍어 올려서 노하우를 공유하거나(‘면회 도시락 뽐내기’), 입대 전 둘의 추억이 담긴 사진 등으로 만든 달력인 ‘기둘력’을 제작해 올리기도 한다(‘셀프 기둘력 뽐내기’).

여자친구뿐 아니라 현역 장병의 어머니와 가족들도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감정을 교류하고 있다.

일병 아들을 둔 김모(54ㆍ여)씨는 “카페에 처음 가입했을 때 이런 정보를 공유하고 기다린다는 젊은 친구들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며 “도시락도 올리고, 달력도 만들고 우리 때와는 다르게 뭔가 활기차고 밝고 깜찍하지 않느냐”고 했다.

일부 회원들이 문제가 되는 줄 모르고 군 훈련일정 등을 올리는 바람에 기밀유출 논란도 있었지만, 운영진 등의 지속적인 공지로 현재는 그런 글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