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상장을 앞둔 기업의 회계 투명성을 높여 투자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도입된 ‘지정감사제’가 예비상장사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작년 말 스팩(SPACㆍ기업인수목적회사)상장을 준비하던 A사는 결국 상장을 연기했다. ‘지정감사제’에 따라 회계감사 신청을 했으나, 감사보수료가 터무니없이 높다고 판단해서다.
A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1차 지정한 업체에서 7000만원을 제시해, 당국에 재지정을 요구했다. 재지정된 업체는 1억 6000만원을 불렀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이어 “회계업체에서는 스팩상장이라 감사하는데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했지만, 1억 넘는 금액은 터무니 없다”고 토로했다. A사는 평상시 매년 2000~3000만원 수준에서 감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지정감사제란 유가증권이나 코스닥시장 상장시, 금융감독원이 지정한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를 받도록 한 제도다.
예비 상장기업들은 지정된 회계법인과 순차적으로 협상을 벌이며 배정된 회계법인을 거부하는 재지정요청권을 한 번 행사할 수 있다.
문제는 재지정 요청이 한번 뿐이라 2차 지정 회계법인과는 무조건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회계법인에서 이를 악용, 평상시의 몇배에 달하는 감사보수료를 요구하지만 예비상장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최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B사 관계자는 “앞서 상장한 회사들에 물어보니, 재지정때는 가격이 더 올라간다며 무조건 첫 법인과 협상을 진행하라고 했다”며 “선택권이 없다 보니, 가격 인플레가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정감사를 한 회계법인이 3년간 같은 기업을 맡을 수 없는 부분도 과한 보수료를 부른다. 지난해 상장한 C사 관계자는 “한 번 보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2~3배 이상의 과한 보수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한데 금융당국에서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와 상황은 인지하고 있다. 현재 방안을 검토중”이라며 “감사보수가 높은 문제는 양자가 서로 협의를 잘 해서 가격조정을 하라는 권고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업체들이 복수의 회계법인에서 동시에 협상을 벌일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넥스에서 이전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한 업체 대표는 “회계법인 2곳을 당국에서 지정해주고, 그 중 하나를 기업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지정감사 취지도 살리고, 현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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