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에서 프로야구 2위 팀으로내 전화를 받은 성준 코치님은 내가 요즘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덕에 단도직입적으로 내 의사를 전달 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괜찮은 왼손투수가 한 명 있는데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은 괜찮냐?” “135~140km 던집니다.” “그래? 이만수 감독님께 이야기 해볼게” 테스트는 예상보다 빨리 이뤄졌다. SK가 곧 교육리그에 들어가기에 다음날 바로 테스트를 보기로 했다. 경수와 함께 부랴부랴 인천으로 갔다. 문학 마운드에 선 경수는 제법 좋은 공을 던졌다. 그동안 함께 탄탄하게 준비한 성과가 공에 잘 묻어나왔다. 감독님과 코치님도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예상은 곧바로 현실이 됐다. 테스트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경수 우리 팀에 합류시키자”라는 코치님의 연락을 받았다. 우리가 해낸 것이다!이젠 결정권은 오히려 경수에게 있었다. 원래 미국에 가고 싶어 했던 친구니까. SK의 제안을 사양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도 있었다. 솔직히 난 경수가 SK로 갔으면 싶었다. 기회는 올 때 잡아야 하니까. 그리고 적지 않은 나이(33살)를 가진 경수에게 찾아오는 기회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난 경수에게 “어떤 결정이든 존중하겠다”라고 말했다. 내 생각이 전해졌을까? 경수는 SK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안 된다’를 ‘된다’로 만드는 사람사실 난 경수와 함께 운동하는 동안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사무실-웨이트-연습장이 한곳에 있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같은 회사를 만들려했다(현재 운영 중인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의 시초다). 다시 말해 ‘잠재력 있는 자의 재능을 꽃피우는 일’을 내 직업으로 삼으려 했다. 나와 함께 운동을 시작한 경수와 이후에 합류한 (윤)동건이가 있었기에 투자자도 빨리 마음을 열었고 사업도 빨리 시작할 수 있었다. “쟤는 안 된다. 해봐도 안 될게 뻔하다. 손대지 마라.”경수와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대다수가 이런 부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내가 선수시절에도 많이 들었던 ‘안 된다’가 내 선수들도 에워쌌다. 난 또 다시 ‘안 된다’와 ‘된다’로 만드는 힘든 싸움을 해야 했다. 그것은 내 직업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독해졌다. ‘안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할 말을 하려면 전화도 하지 마라. 난 안 되는 걸 되게 만드는 사람인데 계속 안 된다 하면 내 직업을 모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나를 위한 말이라도 달게 못 받는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독한 마음으로 키운 경수를 프로로 보낸 뒤 ‘많은 사람이 힘을 모으고 의지를 모은다면 안 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에 대한 자신감도 얻었다. [정리=차원석 기자 @Notimeover]* 최익성이름보다 ‘저니맨’이란 호칭으로 더 유명한 남자. 힘들고 외로웠던 저니맨 인생을 거름삼아 두 번째 인생을 ‘정면돌파’ 중이다. 현재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 대표를 지내며 후진양성에 힘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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