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지난 18일 판교역 앞 광장.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광장에 등장했다. 재계가 진행하는 ‘민생 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서다. 박 대통령은 “얼마나 답답하면 서명운동까지 벌이시겠느냐”며 이들을 독려했다.

그 이후 천만 서명운동은 언론에 크게 오르내리고 있다. ‘VIP’가 서명한 이후 국무총리, 일부 장관의 서명 러시가 이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겠다.

기실 서명운동은 대통령의 격(格)에 맞는 행보는 아니다. 서명운동은 주로 ‘약자’가 더이상 목소리를 담아낼 수단이없을 때 집단의 힘을 빌어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국가의 최고 결정권자인 대통령마저 서명운동을 선택하는 상황이 낯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의 서명운동은 대통령마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걸 의미한다. 박 대통령은 앞선 신년 대국민담화에서 “대통령과 행정부가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젠 국민에게 직접 호소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법이 국회에서 막혀 있는 현실에 대한 토로다.

국회는 여전히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총선 모드까지 더해지면서 임시국회는 언제 끝났는지, 언제 또 열었는지 주목조차 받지 못한다. 여당은 법안 처리를 강행하고, 야당은 반대로 일관한다. 생산적인 논쟁은 사라진지 오래다.

일부러 법안을 부결시켜 본회의에 ‘우회상장’하는 편법까지 등장했다. 여당은 불가피한 선택임을 호소하고, 야당은 국회를 무시한 처사라고 반발한다. 논란은 논란을 키우고 토론과 합의의 정도(正道)는 뒤편이다. 19대 국회를 향한 독설과 악평에 여야 그 누구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대통령의 서명운동을 두고 반론도 적지 않다. 대통령마저 국회를 믿지 못하고 직접 정치에 나선다는 반발이다. 한편으론, 오죽하면 이제 대통령이 서명운동까지 나서느냐는 동정론도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호ㆍ불호를 떠나, 국가를 통솔하는 대통령이 서명운동에 나서는 한국의 현실은 서글프다. 여야 정쟁과 식물국회의 여파로 이젠 대통령마저 정공법의 리더십을 잃어버렸다는 방증이다. 식물국회를 야기한 여야도, 식물국회라는 이유로 국회를 포기한 채 직접 입법 압박에 나선 청와대도 달갑지 않다. 2016년 1월, 대한민국 식물정치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