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자본의 힘이 워낙에 막강하니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죠. 할리우드에서도 중국 눈치를 본다는데 우리야 어떻겠어요.”
한류스타가 소속된 연예기획사 대표의 이야기다. 지난해 12월 기준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들어온 중국 자본은 1조 5000억원애 달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불 븥은 ‘차이나머니’의 공습은 올해 더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자본의 유입으로 연예기획사, 드라마ㆍ영화 제작사 등이 투자를 받는 사례가 흔해졌다. 방송사는 국내 시청자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 수립에 분주하다. 지금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온 신경은 중국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난해 S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선 난데없이 ‘중국 네티즌 인기상’이 신설됐다. 방송3사 연말시상식은 중국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됐을 정도다.
‘자본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중국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자 업계 관계자들은 다양한 부작용을 우려했다. 우수 인력과 노하우의 유출이 그 첫 번째였고, 현지 투자를 받은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하청업체로의 전락하고, 중국의 ‘문화속국’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최근 한국 중국 대만을 달군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 쯔위를 둘러싼 국기논란에서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관계자들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현재를 목격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중국시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대중문화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내수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로,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나오지 않고 있다”며 “돈이 되는 곳을 찾다 보니 중국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해외 콘텐츠의 대한 규제가 높아지니 중국의 장막을 넘기 위해 현지 자본의 투자를 받아 함께 대륙으로 들어가고 있다.
할리우드의 대형 제작사마저도 차곡차곡 인수하고 있는 중국에선 아직 한휴스타의 파워와 콘텐츠의 영향력이 탄탄하다. 때문에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들은 이 광풍이 잦아들기 전에 한 방울의 자본력이 튀어주길 바라고 있는 모습이다. 명실상부 톱배우가 소속된 연예기획사 대표는 “중국에선 현재 국내 엔터 산업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우리 회사의 경우 백지수표 제안이 수도 없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시장의 지속력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우려는 자본의 영향을 받은 시장의 위력에서 나왔다.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슬금슬금 대륙의 눈치를 봤다. 쯔위 사태에 대해 국내에선 JYP엔터테인먼트의 굴욕적인 대응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시장을 놓치려다 대만의 마음도 잃고만 형국이다. 어리석은 초기대응에선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쥐고 흔드는 ‘왕서방’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상황을 보여준다.
국내 제작사들 역시 중국시장 공략을 위해 한류스타들을 앞세워 드라마를 제작한다. 이영애 송승헌의 ‘사임당, 더 히스토리’(SBS)는 지난해 12월 강원도 강릉에서 주연배우 간담회와 현장공개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총 7개국에서 250개나 되는 해외 언론이 참석했다. 100% 사전제작 드라마로 당시까지만 해도 전체적인 스토리뿐 아니라 티저 영상 하나조차 공개하지 않은 자리였음에도, 이 현장은 성대한 축제를 방불케했다. 당시 현장은 유명 관광지와 흡사했다. 중국 일본 이란 등지에서 몰려든 취재진은 배우 이영애가 등장하자 환호성을 질렀다. 현장에 참석한 국내 관계자들 사이에선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만든 보여주기식 행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콘텐츠가 내수시장에서의 성공과 한국 시청자에 대한 배려를 고민했는지조차 의문이 드는 현장이었다. 드라마는 홍콩 엠퍼러그룹에서 약 150억원 가량을 투자받았다. 2월 방송을 앞두고 있는 ‘송송커플’ 송혜교 송중기의 ‘태양의 후예(KBS2)’도 한류시장을 공략한 드라마로 사전제작 중이다.
KBS 2TV ‘무림학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글로벌‘ 청춘액션극을 표방, 다국적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무림학교’ 역시 현지 진출을 위해 사전제작됐다. 중국 광전총국에서의 사전심의를 받기 위해서다.
드라마가 중국 시장을 겨냥했다는 것은 일단 ‘다국적 학생’들이 모인 학교, 주인공 중 한 명이 중국인이라는 설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애초에 현지를 겨냥했음에도 현지의 정치, 문화, 경제적 정서에 대한 사전학습과 이해가 떨어졌다는 점은 쯔위 사태에 이어 또 한 번 드러났다.
지나 19일 방송된 KBS2 ’무림학교‘ 4회분에선 무림봉에 오른 윤시우(이현우)와 왕치앙(홍빈)이 생존을 위해 힘들게 불을 피운 뒤, 더 태울 종이를 찾는 시우의 요청에 중국 돈을 태우는 장면이 등장해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문제가 됐다.
드라마 게시판에서 한 시청자(아이디 ‘QUAN YAN’)는 “4회에서 중국 돈을 태우는 장면이 중국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 법규상 돈을 훼손하는 행위는 위법이고, 중국 화폐에는 제1대 주석 얼굴이 있다”고 밝혔다.
드라마에서 왕치앙은 중국 최대 재벌가의 아들로 출연하는 데다 불을 피우는 모습은 이들 두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빨리 불을 피우기 위한 상황에서 연출된 장면이었다.
‘무림학교’ 관계자는 이에 “중국이나 중국 문화를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면서 “‘무림학교’ 재방송과 VOD 등에서 해당 부분 영상을 삭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급한 불은 일단 끄겠다며 내린 조치다.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불거진 논란에 ‘무림학교’ 측이 취한 결정에는 앞서 빚어진 ‘쯔위 사태’에 대한 염두였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국내 시청자들은 무리없이 보고 지나갔으며 누구도 인지하지 못했던 장면이다. 그러나 이미 한국의 콘텐츠는 아시아권으로 확산됐으며, 드라마 제작사들은 언제나 중국 등 아시아와의 ‘동시방송’을 목표로 콘텐츠를 기획, 제작한다. “중국을 통한 매출이 나오지 않는다”면 먹고 살 길도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 드라마제작사 관계자는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며 부작용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상황이다. 중국의 자본에 잠식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항상 가지고 있었고, 이젠 너무나도 중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도 “영국 역시 미국 자본이 유입됐고, 미국의 돈으로 콘텐츠를 만든다. 하지만 영국의 대중문화시장은 여전히 건강하다. 한국 역시 현지 자본으로 우량 콘텐츠를 만들고 중국을 거쳐 더 큰 시장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온다”며 “다만 현재 우리의 입장에선 중국 자본의 영향력이 너무도 커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가 중국에 의해 좌지우지하는 분위기다. 중국의 눈치만 살피다 보니 이래저래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안타깝다. 중국의 눈치를 보다 다른 시장까지 놓치지 않을까 우려도 나온다”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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