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미쓰비시의 장기번영은 일본 산업구조의 최대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18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가 전한 내용입니다. WSJ는 “자본과 인재가 하나의 기업 그룹에 집중돼 있는 시장 구조는 아베 신조(安倍 晋三) 정권이 직면한 과제를 부각하고 있다”며 “일본 경제를 다시 성장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창출이 과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틀 뒤 미쓰비시 자동차는 기자회견을 통해 연비 관련 데이터를 조작했다고 발표합니다.

미쓰비시(三菱) 그룹은 대표적인 ‘케이레츠’(系列)입니다. 케이레츠는 수 백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일본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조직을 일컫습니다. 패전으로 해체된 재벌들의 뒤를 이은 전문 경영인들이 구성한 독특한 기업조직을 뜻하는 표현이지요.

이와사키(岩崎) 가문이 운영했던 기업인 미쓰비시는 미쓰이, 야스다, 스미토모와 함께 일본 메이지 시대의 산업화를 이끌었습니다. 1945년 항복선언과 함께 맥아더 사령관의 재벌개혁으로 족벌 경영이 사라진 대신 미쓰비시 사장단 모임인 ‘금요회’(金曜會), 즉, 케이레츠가 등장했죠. 미쓰비시 케이레츠는 끈끈한 단결력을 발휘하며 일본 산업 전반을 발전시켰습니다. 일본 정부도 미쓰비시 케이레츠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오늘날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구축했죠.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내각도 ‘국가 번영의 명예’를 되찾겠다는 명분으로 미쓰비시 그룹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케이레츠의 단결력과 정부의 지원은 아이러니하게도 잇따른 대기업의 비리를 양산했습니다. 미쓰비시 차는 금요회가 투입한 5400억 엔(약 5조6000억원)으로 2000년과 2004년 리콜 은폐 위기를 넘겼습니다. 상품의 질과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완전 시장 구조였다면 미쓰비시 차는 파산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특유의 조직력을 바탕으로 미쓰비시의 케이레츠는 미쓰비시 차를 부활시켰습니다. 심지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자동차 중소기업들을 인수하거나 하청업체로 둬 미쓰비시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습니다.

지난달 미쓰비시 자동차의 세 번째 부정행위가 발각되면서 피해가 일파만파로 퍼졌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이른바 ‘미쓰비시 자동차 마을’이라고 불린 오카야마(岡山) 현 소자(総社) 시였습니다. 소자 시에는 오카야마 현에 위치한 미쓰비시 차 공장인 미즈시마 제작소를 지원하기 위한 하청업체 30개사가 집중적으로 포진해 있었습니다. 이 중 12개 사는 매출의 90%를 미쓰비시 자동차에 의존해왔습니다. 연비 조작 사태로 12개 업체는 업무 전체 혹은 일부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2개 사를 포함한 현내 하청업체 15곳이 업무의 일부나 전체를 중단한 상태입니다. 연비 조작사태로 오카야마 현의 소자 시는 긴급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미쓰비시 차에 세금을 추가로 지불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거시경제도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 전국 경차의 판매율은 전월 대비 15% 급락했습니다. 미쓰비시와 수직적 협력관계를 맺은 하청업체 7800여 곳은 경영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당장 연비조작이 확인된 경차 4종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관련 직원 1300여 명과 하청업체 15곳이 강제 휴업에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한 회사의 과실로 일본 경차의 판매량이 15% 급감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미쓰비시 자동차의 자국 시장 점유율은 2.0%에 불과합니다. 그 2%의 시장을 위해 다수의 수평적ㆍ수직적 협력관계를 구축해온 회사들이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으면서 사태가 거침없이 확산된 것입니다.

주간지 도요케이자이(東洋經濟)신문과 겐다이(現代) 비즈니스 등 여러 경제 전문지들이 오래전부터 “미쓰비시 제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구조를 탈피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케이레츠로 흥한 일본 경제가 케이레츠로 인해 쇠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ㆍ닛케이) 신문은 엔화환율이 올 한해동안 현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일본의 핵심 수출기업들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어 엔화가 달러 당 106엔 대로 오르지 않더라도 자동차 기업들의 수익은 지난해보다 1조 6300억 엔(약 17조4559억원) 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미쓰비시 차의 연비조작 사태로 경차 판매율이 급락한 데다 엔고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경제 손실 규모는 수천 억엔에서 수조 엔대까지 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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