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문화
뿔난 日 청년들, “우리는 유토리(여유) 세대가 아닌 ‘빈곤세대’”
뉴스종합| 2016-05-03 14:21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2003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탈주입식 교육인 ‘유토리’ 교육을 받아온 유토리 세대(일본 1987~1996년생을 지칭하는 표현)들이 분노하고 있다. 유토리세대들은 ‘경쟁없이 여유롭게 자랐기 때문에 세상물정을 모를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일본 매체인 제이캐스트(J-cast)는 3일 일본의 주택ㆍ부동산포털사이트인 ‘오우치노 종합연구소’(オウチーノ総研)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유토리세대 688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유토리 세대’라는 표현을 싫어한다고 밝힌 응답자가 전체의 57.7%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유토리’ 표현에 분노한 이유로는 주로 “세상물정을 몰라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빈곤 노년층의 실태를 고발한 ‘하류 노인’의 저자이자 NPO(비영리단체) 대표 후지타 다카노리(藤田孝典)는 “일본 청년층은 유토리 세대가 아니라 빈곤세대다”라며 “비정규직의 확대 속에서 젊은 세대들은 연애도, 결혼도, 육아도 할 수 없는 빈곤한 처지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토리 세대들을 포함한 15~39세의 일본 청년층을 통틀어 ‘빈곤 세대’라 지칭한 저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유토리 세대’에 대한 일본 기성세대들의 선입견은 사내 신입사원ㆍ인재육성 프로그램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본 회사에 사원 육성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업체인 ‘윌 시드’(Will Seed)는 “유토리 세대로 불리는 신입사원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며 ▷시키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 설명서나 답변을 즉시 해줘야 한다 ▷ 상사와의 술자리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 회사와 관련된 모든 일들이 자신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는다 ▷ 주의시키면 금방 풀이 죽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유롭고 자유로운 학습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주장했다. 자칫 잘못하면 청년들이 체감하는 경기 불황이 단순 ‘엄살’이라고 주장할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내각과 일본 공영채널인 NHK방송은 지난 2014년, 청년층의 무직은 이들이 현실을 도피하는 성향이 강하고 까다로운 취업조건을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한 민간단체의 자료를 소개하기도 했다.

후지타 대표는 이러한 관측에 크게 반발한다. 그는 일본 경제주간지 도요케이자이(東洋經濟)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실업률은 대단히 낮지만 사회보장은 열악하다”며 “비정규직과 파견 노동자라는 안전하지 않는 취업 구조를 만들어놓고서는 그 책임의 화살을 청년들에게 돌리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표면상 과거에 비해 경제활동을 하는 청년층이 증가했지만, 과거와 달리 안전하지 않은 근로환경이 대거 조성됐다는 분석이다. 그는 “버블 붕괴와 함께 1990년대부터 서서히 고용환경이 열악해지고 파견 근로에 대한 규제가 완화됐다”며 “덕분에 실업보험도 불충분하고 부족한 월급에도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한 채 블랙기업이나 취업 사기의 희생양이 되는 청년들이 급증했다”고도 주장했다.

악덕기업을 지칭하는 이른바 ‘블랙기업’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저자 곤노 하루키(今野晴貴)는 취업난을 청년층의 응석으로 치부해버린 아베 내각을 질타했다. 그는 “아베 총리가 말한 ‘실업 없는 노동’이란 있을 수 없다. 가난한 나라의 독재자나 추진할 정책이다”며 “노동 시간 상한 규제가 없고, ‘뭐든 일하라’는 식의 논리로 마땅히 제공해야 할 직업 훈련 프로그램 등을 축소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결국 야근이 당연해지고 가혹한 노동 속에서 우울증에 빠진 청년들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4년 곤노 하루키가 진행한 ‘블랙기업 대책 프로젝트’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해고당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는 할로우워크(Helloworkㆍ공공 직업 안정소)에 공지된 구인 180건 중 139건은 77%가 근로기준법에 준거하지 않은 고용실태를 보이고 있었다. 월 19만 4500엔(약 200만 원)의 임금을 보장한다는 기업도 확인 결과, 80시간의 추가근무를 전제한 것으로 실제 시급은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 2일 게이오 대학의 가네코 마사루(金子勝) 경제학과 교수는 “학자금 대출을 받은 고등학교ㆍ전문대학 출신의 일본 청소년들은 졸업 직후 500~600만 엔에 달하는 빚을 떠안게 된다”며 “하지만 15~24세 청년층의 48%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빚을 상환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공개한 일본의 상대적 빈곤율은 16.1%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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