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 여파로 요동치는 금융시장

F4, 릴레이 회의 열고 시장 회복 강조

금융사도 불안 진정에 힘싣고 있지만

증시 불안, 고환율 지속 등 우려 여전

14일 오후 국회 선택에 관심 모아져

코스피 하락 개장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탄핵 정국 여파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경제·금융 수장들이 시장 상황에 안정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점을 연일 강조하고 있지만 불안 심리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진단을 포함한 시장 전반의 데이터는 한국 금융시스템의 견고함에 무게를 두고 있으나 ‘경제는 심리’라는 표현을 증명하듯 시장은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금융시장 변동성 완화를 위해 경제 수장들이 연일 발벗고 나서고 있음에도 급선무는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다. 14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소추안 표결 결과에 따라 국내 경제는 또 한 번 휘청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이른바 ‘F4(Finance4)’는 윤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비상계엄령을 발동한 지난 3일 밤부터 13일까지 7일 하루를 제외한 매일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열었다. 금융·외환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비상계엄 사태 직후 즉각적으로 무제한 유동성 공급 등 시장 안정화 조치를 내놨고 관계기관과 긴밀히 공조해 시장 상황을 실시간 살폈다. 최근 정치 상황에 따른 불확실성이 있다는 데에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지만 정부의 시장안정 노력과 안정적인 경제 시스템을 바탕으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에 국내외 금융기관, 해외 경제·금융당국과의 만남을 직접 주재하며 정치 상황에 따른 경제적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3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F4는 국내 금융지주에도 ‘SOS’를 쳤고 금융사는 저마다 해외 투자자·금융기관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지난 11일 160여 해외 투자자에게 안내 서한을 보내 유동성 등을 선제적으로 점검하며 경영 환경 불확실성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에 앞서 KB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도 주주서한을 통해 현 상황을 설명하며 위험관리 방안 등을 밝혔고 신한금융그룹 역시 해외 투자자 대상 컨퍼런스 콜 등을 진행하며 한국 금융시장의 안정성에 대해 소통하고 있다.

금융권, 외국인 투자자 달래기 총력

이런 가운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무디스 등 3대 국제 신용평가사는 탄핵 정국에도 한국 국가신용등급이 여전히 안정적이라는 의견을 냈는데 F4는 이러한 진단이 우리 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분위기다. 정치적 불안 속에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갔고 원화 가치는 곤두박질했다.

특히 주요 외신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더 오래 갈 가능성이 있다”(미국 블룸버그) 등의 부정 전망이 보도되면서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해외의 우려는 커졌다. 국내 주요 은행으로 현 경제 상황과 투자 자산의 안전성 등에 대한 문의가 쇄도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실제 외국인 투자자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사흘간 약 1조원 순매도했다. 이에 코스피는 3거래일간 종가 기준 2.88% 떨어졌다.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 불발 이후 첫 거래일인 9일 코스피는 올해 들어 처음 2400선이 깨지기도 했다. 지난 13일 기관 매수세에 힘입어 코스피가 2490대를 회복했으나 반등세 지속 여부를 장담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외환시장의 충격은 특히 컸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3일에도 1433.0원에 마감하며 1430원대가 굳어지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이 밤중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 주간거래 종가가 1402.9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과 열흘 만에 30원 이상 오른 것이다.

시장에서는 연말까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최고 1460원대로 올라설 것으로 관측하고 있고 일각에선 환율 상단을 1500원대까지 열어둬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원/달러 환율 추이
원/달러 환율 추이

한국 경제의 회복력을 적극 세일즈하는 F4의 자신감과 달리 기획재정부가 지난 13일 공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2월호’에는 불안감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기재부는 이달 그린북에서 ‘우리 경제의 하방위험 증가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지난달 ‘완만한 경기 회복세’라는 진단은 물론 직전 6개월간 언급했던 ‘경기 회복 흐름’이라는 표현도 사라졌다. 기재부가 그린북에서 ‘하방위험 증가’를 언급한 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당시인 2020년 5월 이후 4년 6개월만이다.

국회 앞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금융권은 14일 국회의 선택에 주목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 결과가 금융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일단 탄핵안이 통과되면 시장을 둘러싼 국내외 불안 심리가 어느 정도는 잠재워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최근 시장 흐름이 요동친 데에는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기에 탄핵 가결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줄어들면 시장도 회복세를 탈 수 있다는 의견이다.

다만 탄핵이 통과된다고 한들 즉각적으로 시장이 안정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헌법재판소가 심리를 마칠 때까지 상당 기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이어지는 등 정치적으로 안정을 찾았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환율 상승 흐름은 탄핵안 통과 이후 한 달여간 지속됐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 1130원대였던 원/달러 환율은 탄핵안 표결 직전 1170원 안팎까지 급등했고 탄핵안 통과 이후에도 오름세가 계속되며 이듬해 1월 1210원 안팎까지 올랐다. 3월 10일 헌재가 최종 인용 결정이 내린 이후에야 1100원대 초반으로 안정화됐다.

내년 1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는 것도 큰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당장 보편 관세 부과를 예고하고 있어 원화 가치 절하가 심화될 여지는 남아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상정, 퇴장하는 국민의힘
지난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김건희 특검법 제의안이 부결된 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상정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연합]

반대로 탄핵 부결 시에는 시장 불안감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탄핵 부결을 경제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악재로 받아들일 공산이 커서다. 앞서 지난 7일 1차 탄핵안 표결이 불발된 직후에도 증시가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불안감은 시장에 즉각적으로 반영된 바 있다. 야당은 탄핵안이 가결될 때까지 표결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시장 변동성 완화가 지연되면 해외 투자자·금융당국에 빠른 회복과 안정화를 약속해 온 우리 금융당국의 신뢰도 측면에서도 부정적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탄핵 여부와 별개로 시장 안정화를 위해선 금융당국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라며 “국내외 시장 참여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가능한 모든 안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