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 북한이 2009년 화폐개혁을 단행한 뒤 법적ㆍ제도적으로 엄격히 금지된 외화(달러 및 위안화) 보유나 유통이 급격히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당한 외화 수급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8일 한국수출입은행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북한의 금융 : 실태와 과제’를 주제로 마련한 기념 세미나에서 조동호 한국수출입은행 북한ㆍ동북아연구센터 소장은 기조발표를 통해 “북한 경제는 발전과 정체가 공존하고 있다”며 “경제성장률로 표현되는 매크로 상황은 개선되고 있으나 사회주의 경제체제 시스템은 와해되고 있다”고 밝혔다.
조 소장은 “시장이 없으면 북한 경제가 운영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시장이 커지면 사업, 장사 등을 매개하는 금융의 출연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 화폐가 아닌 미국 달러나 중국 위안화가 통용되는 현상을 넓은 의미의 ‘달러라이제이션’으로 정의하고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은 오늘날 북한경제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미래상을 전망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이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북한 돈이 아닌 외화를 선택하는 의미의 ‘자산 대체’에서 확대돼 이제는 교환의 매개 수단으로까지 외화가 북한 돈을 대체하는 ‘통화 대체’도 진행됐다며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양 교수에 따르면 2005~2012년 탈북자 가운데 유효응답자 926명을 대상으로 ‘장마당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화폐’를 설문조사한 결과, 2009년 중국 위안화를 꼽은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5.8%에 불과했으나 이듬해 17.2%로 껑충 뛰었으며 2012년에는 25.9%까지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북한 돈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94.2%에서 82.2%(2010년), 74.1%(2012년)로 떨어졌다.
또 2011~2013년 탈북한 828명을 대상으로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화폐의 비율을 설문조사한 결과, 2011년 11.5%였던 중국 위안화 비율은 2013년 56.8%로 높아졌다. 이 기간 북한 돈은 76.2%에서 42.0%로, 중국 위안화의 거래비율이 북한 돈의 거래비율을 추월했다고 양 교수는 밝혔다.
그는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이 2009년 ‘몰수형 화폐개혁’으로 주민들에게 북한 돈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게 만든 결과로 풀이했다. 또 암시장에서의 물가가 계속 가파르게 상승한 것도 달러라이제이션을 촉발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달러라이제이션이 가능할 정도로 외화공급이 충분히 이뤄졌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양 교수는 “밀무역 성행, 대외무역 종사자들의 외화반입, 해외 파견 노동자 및 해외 주재원들의 외화 반입, 중국 거주 친척 및 남한 거주 탈북자들의 송금 등 공식적인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 광범위한 외화 유입 및 축적 경로 존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달러라이제이션으로 인해 북한 환율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물가상승 압력이 증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외화가 화폐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경제활동을 정상화시켜 주고, 민간에 축적된 외화가 화폐기능을 일정 정도 수행하면 생산활동을 위한 자본의 기능을 부분적으로 수행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양 교수는 밝혔다. 또 달러라이제이션이 일정 수준 이상 진행되면 오히려 물가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2013년 이후 북한 물가가 안정된 원인의 하나가 바로 달러라이제이션이라고 양 교수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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