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훈 사회부장 나의 지인 A씨가 남편과 함께 일본 와세다(早稲田)대학에 유학하던 시절이다. 1990년대 일본에 첫 발을 딛고 걱정이 앞선다.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던데…. 과거사의 앙금때문에 서먹할텐데,어떻게 일본사람들을 대해야 하나. 그는 “그래, 차라리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몇 년간 참고 살자”고 다짐한뒤, 도쿄 북동쪽 30km 지점에 있는 사이타마(埼玉)현 도코로자와(所澤)시 나카토미(中富) 마을에 살림을 차렸다.
어른들이야 참고 산다지만 당시 여섯 살난 아이의 유치원생활을 생각하니 다시 앞이 캄캄하다. 용기를 내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고 갔을 때 어수룩해 보이는 A씨 모자를 맞은 것은 야마다 아키코(山田晶子)씨였다. 머뭇거리던 A씨에게 다가온 아키코씨는 유치원 입원 수속을 마치 자기 일처럼 처리해줬다고 한다. 아울러 동네 길과 마을유래에 대한 설명이며, 풍속까지 꼼꼼하게 알려주더라는 것.
예상외의 환대를 받은 A씨는 “몇 푼 안받고 아이의 영어를 가르쳐주겠다”고 했고, 둘 간의 우정이 쌓이면서 친구들도 늘어갔다. 그들이 가장 궁금해하던 ‘김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줬을땐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 마을 여름 축제에 외국인과 타지인은 낄 수 없다. 하지만 아키코씨는 유카타 한벌을 갖고와서 A씨에게 건넸고, 유치원 아이 것까지 부랴부랴 재봉질해 들려준 뒤 A씨의 소매를 이끌어 웃음소리로 떠들썩한 ‘봉오도리(盆踊)’춤마당으로 인도했다고 한다.
사이키토모코(齊木朋子)씨는 A씨와 대화하면서 그의 신변을 체크한뒤 이사때나 나들이때면 늘 필요한 물건과 정보를 챙겨줬다. 거처를 옮기면 오뎅국과 밥을 지어 이삿집을 찾았고, 오쇼가츠(お正月), 타나바타(七夕) 등 일본 명절때엔 제수음식 등을 건넸다. “한국과 명절 음식과 풍속이 비슷하다”는 말을 건네면 사이키씨는 “이웃인데 한국문화도 섞였겠지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속설에 대해 A씨는 손사래를 친다. 사이키씨는 자녀 교육, 남편과의 냉전, 자기 심정 등을 털어놓고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A씨와 일본인 간 우정은 ‘편견은 편견일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게 한다. 그들에게 유일한 아쉬움은 양국 주민의 우정처럼 국가 차원에서도 편견을 버리고 마음과 믿음을 공유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우정의 바탕은 마음이다. 성경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골목에 피를 흘린채 쓰러진 사람을 향해 길가던 ‘착한 사마리아인’이 보여준, 있는 그대로의 사랑이지 일회성의 ‘의무적 행위’가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사람에게 이웃으로서, 친구로서 가까이 다가가고, 그를 친구로 대접하는 것을 뜻함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링컨 대통령은 취임이전 “링컨이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국가적 재난”이라며 자신을 늘 괴롭히던 에드윈 스탠턴을 국방장관에 발탁한다. 수많은 참모들의 반대에 그가 “원수는 없애 버려야지요. 사랑으로 녹여 친구로 만들어야지요”라고 말한 점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통한다.
복합재앙을 당하고 있는 일본에 한국의 온정이 쏟아진다. 하지만 이 국면이 지나면 과거사에서 비롯된 빗나간 자존심,경쟁심이 되살아나 더 큰 우정으로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 때문에 온정 뿐 만 아니라 양국간 ‘믿음’이 필수적이다. 온정이 앙금을 녹이고 믿음을 쌓는 계기가 되도록 양국이 ‘마음으로’ 상대를 대했으면한다. “야마다씨, 사이키씨, 힘내세요!” 지금 한국민의 진실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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