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6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1

“이 정도에 겁을 먹다니, 바보 같아요, 도일 씨는…”

공의 세계, 무의 세계… 허공, 혹은 바다를 떠올렸던가? 그녀가 어찌나 세게 끌어당겼던지 권도일은 안전벨트에서 몸이 반쯤이나 옆으로 삐쳐나간 채로 그녀의 품에 안긴 상태였다. 눈을 뜨면 치마폭에 토해놓은 오물이 거슬렸지만 눈을 감으면 그녀의 따뜻한 젖가슴이 얼굴에 맞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차체가 약하다고 위험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충돌했을 때에 문이 잘 열리게 엔진룸이 찌그러지면서 충격을 흡수하고, 실내를 이루는 차체는 찌그러지지 않는 것이 좋지요.”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를 품은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권도일은 걱정이 앞설 뿐이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도로에 차량은 가득하고, 그 차량 사이를 시속 180킬로미터로 이리저리 내달리면서… 치마폭에 토해놓은 뜨끈뜨끈한 오물의 악취를 견디며 권도일을 끌어안고 있는 상황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자동차의 안전이 아니라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의 안전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예요. 알겠지요?”

타이르듯, 어우르듯 부드럽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권도일은 온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멀미 증세라고나 할까? 감은 눈 속에서 벌레들이 와글와글 날아다니는 것 같고 사방이 고요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계속 구토가 이어지는 통에 그는 식은땀마저 흘리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더욱 피치를 가하며 차를 몰아가는 중이었다.

“그만! 못 참겠네요. 그만 세워줘요.”

“거의 다 왔어요. 코스레코드 40분은 달성해야지요.”

“제발…”

“문제는 이 1974년산 치타의 보디가 모노코크 타입이 아니란 점이에요. 섀시와 프레임을 결합한 구조인데… 그 점이 조금 섭섭하단 거지요.”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현성애는 자동차에 관한 전문상식을 권도일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중이었다. 하긴 이런 상황에서 그 까닭을 따질 필요도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코스레코드를 기록해야 하는데 사방이 막힌 도로 상황에서 파트너는 치맛자락에 토하기나 하는 그런 순간에 과연 무슨 생각인들 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현성애는 거의 본능처럼 중얼거리고 있는 셈이었다. 오감을 총동원하여 달리는 중에 그녀가 권도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로지 힘껏 끌어안고 아무 말이나 중얼거리는 일 뿐이었다. 다시 정리하자면… 현성애는 무척이나 지독한 여자라는 말이었다. 파트너가 죽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코스레코드를 달성하고자 하는.

“모노코크 보디를 택하면 차체도 가벼워지지만 외부의 힘을 보디 전체로 받기 때문에 충돌했을 때 에너지 흡수가 쉽단 말예요. 그러니 프레임을 쓴 차체보다 안전성이 훨씬 높아진다고요.”

“알았어요. 사고내지 않으면 되잖아! 그러니 이제 스톱!”

권도일은 그녀의 품에 안긴 채로 거의 울다시피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10여분쯤이나 더 달린 후에야 차를 멈춰 세웠다. 권도일의 부탁 때문에? 어림없는 소리. 그녀는 차를 세우자마자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기쁨의 환호성을 질러댔던 것이다.

“도일 씨! 39분 52초! 무려 8초나 앞서서 인천공항에 도착 했어요.”

이런 세상에! 그녀는 기필코 목적을 이룬 모양이었다.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정해놓은 코스레코드를 달성한 그녀는 감격에 겨워 권도일을 더욱 세차게 끌어안았다. 이젠 몸이 자유로워졌으니 아예 몸을 옆으로 돌려 본격적으로 그를 껴안았던 것이다.

“해냈어요. 치타는 역시 우릴 배신 때리지 않았다고요.”

감격에 젖어서인지,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인지 그녀의 심장은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권도일은… 왠지 젖먹이와도 같은 기분에 빠져들고야 말았다. 문득 그녀의 풍만한 젖을 한껏 빨아먹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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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