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인생을 영원한 조국에...’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자신의 좌우명처럼 길지 않은 84년의 인생을 온전히 국가에 바쳤다. 일제 강점기에는 해방된 조국을 꿈꿨고, 6ㆍ25 전쟁 때는 장수로서 나라를 지켰다. 산업화ㆍ민주화 시기에는 포스코 창업자와 정치인으로서 국가 발전에 몸을 던졌다. 적재적소에서 국가가 요구한 시대정신을 몸소 실천했던 ‘이 시대의 그루이자 멘토’였다.

고 박 회장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그를 ‘힘차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회고한다. 넘치는 활력을 가지고 카리스마 있게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을 이끌면서 다양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특히 ‘박태준이 없이는 포항제철(현 포스코)도 없다’고 할 정도로 그의 강력한 리더십은 포스코 창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1978년 중국의 최고실력자인 덩샤오핑이 이나야마 요시히 당시 신일본제철 회장에게 “중국에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을 때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는 대답을 들었다는 일화는 박 명예회장의 존재감을 확인해 주는 유명한 일화다.

고 박 회장이 포스코 재직 당시 했던 어록 중 가장 유명한 말은 바로 ‘제철보국(製鐵報國)’이다. 이는 ‘산업의 쌀’인 철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조국의 은혜를 보답하자는 고 박 회장의 신념이자 포스코의 설립 근거다.

그는 국제사회의 반대로 포스코의 일관제철소 설립이 좌절 위기에 있었을 때 대일청구권 자금 일부를 전용해 기사회생했던 당시 상황을 늘 생각했다. 일제강점기에 고생했던 선조들의 희생으로 짓는 제철소인 만큼 반드시 국가이익을 위해 철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포스코 경영 활동은 이윤 추구가 아니라 애국이 목적이었다. 일관제철소를 성공 못하면 영일만에 빠져죽자는 ‘우향우 정신’도 일관제철소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그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그의 리더십은 최근 ‘대처리즘(Thatcherism)’처럼 ‘태준이즘(Taejoonism)’으로 재조명되기도 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난 6월 ‘특수성으로서의 태준이즘 연구’를 학술지 ‘한국정치연구’에 발표했다. 송 교수가 말하는 태준이즘의 핵심은 ‘절대적인 절망’ ‘절대적인 불가능’ ‘절대적인 사익’은 없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절망과 불가능을 부정하면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세계 최고수준의 철강사를 창립했고, 이 회사를 사사로운 욕심 없이 국가를 위해 경영했던 것이 고 박 회장 리더십의 요체라고 봤다. ‘선공후사(先公後私)’란 말이 빛바랜 교과서에 있는 격언으로 여겨지는 이 시대에 고 박 회장의 리더십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고 박 회장의 빈소를 찾은 4만여명의 조문객들은 모두 우리 시대의 그루이자 멘토였던 고 박 회장의 빈자리를 애통해 했다. 신일본제철이나 차이나스틸 같은 경쟁사 회장들도 고 박회장의 부재를 안타까워할 정도다.

초우 조 치(Tsou Jo Chi) 대만 차이나스틸(CSC) 회장은 16일 빈소를 찾아 “고인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분으로, 철강업계에서는 위대한 분이며 모범이 되는 분”이라며 “직접 와서 조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도 이날 빈소에서 “포스코가 없는 시절은 석기시대였고, 박 명예회장은 대한민국을 철기시대로 이끌었다”고 방명록을 남겼다.

<신소연 기자@shinso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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