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 끝까지, 죽을 때까지(1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발랑스 출발선상에서 아들 유호성을 제지하지 못한 신희영은 소죽은 넋이라도 덮어 쓴 할멈 처럼 맥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녀가 자칭 골프 원정 팀이라 부르던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발랑스로 찾아올 때만해도 까짓 아들 녀석을 되찾아 골프선수로 이끄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다 글렀네요. 티 하나 묻히지 않고 왕자처럼 곱게 기른 녀석을 기껏 자동차 운전수로 만들다니… 그렇게 말렸는데도 통 들어먹지를 않으니 어째요? 생쥐에게 호랑이 새끼를 배도록 하는 게 쉽지. 아들이나 애비나 고집이 쇠심줄이야.”
아들이나 애비나… 유호성과 유민 회장의 뜻에 따라 기필코 랠리경기에 출전한 것을 한탄하는 말이었다. 늘 그녀의 곁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있던 강준호도 심기가 불편하긴 매일반이었다. 그렇다고 두 눈 멀뚱멀뚱 뜬 채로 더불어 소죽은 넋이나 덮어쓰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고…
“갑시다. 이왕에 굿판이 벌어졌으니 무당 작두 타는 구경이라도 해야지요.”
“이 마당에 어디를 가자는 거예요? 심란해 죽겠구먼.”
“모나코로 가자는 거지요. 원래 몬테카를로 랠리를 제대로 구경하려면 모나코 시내의 일류 호텔에 자리 잡고 앉아서 샴페인을 마시면서 해야…”
“그럴까요? 나도 익히 들어서 잘 알지요. 모나코 호텔은 테라스에 앉아서 랠리경기를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면서요?”
“그렇다 뿐입니까? 호텔에 따라서는 침실에서도 랠리 경기를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지요. 아주 멋들어지게 꾸며 놓았습니다. 달리면서… 달리는 걸 볼 수 있도록 해놓았으니 참 기막힌 장사꾼들이지요.”
“뭘 달리면서 뭘 봐요?”
아니나 다를까? 신희영의 두 눈이 반짝 빛나더라는 사실을 강준호가 놓칠 리 없었다.
“더구나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호텔에 투숙하면 일거삼득의 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게 또 하나의 큰 매력입니다. 마당 쓸고 돈 줍고, 어머니에게 칭찬까지 받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어머나, 일거삼득이라… 또 하나의 재미는 뭐지요?”
“침실에서 아래를 굽어보자면 누구라도 커튼을 활짝 열어젖힐 것 아니겠습니까? 품 안에 연인을 안은 채로 아래를 굽어보면 흥미진진한 자동차 경주가 벌어지고, 살포시 눈을 들어 맞은편을 바라보면…”
“아하! 이제야 알겠네. 맞은편 침실에 적나라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커플의 모습을 리얼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거로군요? 어쩜!”
잠시 수탉모양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신희영은 아예 손뼉을 마주쳐가면서 깔깔 웃어댔다. 그렇다면 되었다. 그녀가 큰소리를 내며 웃을 때는 이미 마음의 결심을 굳힌 상태라고 보아도 옳다.
“그럼 당장 모나코 호텔에 예약을 할까요?”
“그러시지요, 뭐. 어차피 랠리경기 종점이 모나코라니 우리가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지요.”
“그럼, 우리 둘… 강유리 선수와 매니저, 한솜 양과 한승우 실장… 이렇게 여섯 명이 묵을 수 있도록 방 다섯 개를 예약해 놓겠습니다.”
“방 다섯 개라고요? 그렇지, 다섯 개면 되겠네요. 그나저나 내년 골프시즌이 열릴 때까지 나머지 사람들을 계속 끌고 다녀야만 하는 건가? 아니면 아예 호주나 뉴질랜드로 가야 옳은 건가? 도저히 판단을 내릴 수 없네요.”
방 다섯 개를 예약하자는 것은 둘이 동침하자는 뜻이었고, 호주나 뉴질랜드를 언급한 이유는 쑥스러움을 무마시키기 위한 일종의 장면전환 용 발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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