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 끝까지, 죽을 때까지(16)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팔선녀들이 내뿜는 물줄기는 가느다란 여덟 줄기의 폭포가 되어 욕조 중앙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는데, 웬걸 옷을 훌훌 벗고 그 폭포 중앙으로 들어서니 기막힌 광경이 연출되는 것이었다.
“아! 멋져요, 신 여사. 따옥, 따옥… 따오기가 따로 없어요.”
“따오기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예요?”
“어릴 때 부르던 동요 몰라요?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오긴지 뜸부긴지 몰라도 하여간 그런 노래가 있었소. 딱 그거야!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아! 알겠다. 거품 때문에? 아니면 폭포 물줄기 때문에?”
“하여간 알몸이 보일듯하다가도 란 보이고… 안 보일듯하다가도 보이고 하는 것이 감질도 나고… 사람 미치게 만드는 군요.”
그 말에 신희영이 까르르 웃더니 리모컨을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건 또 뭐람. 욕조 자체가 스르륵 회전을 하면서 창문 쪽으로 이동하는데… 그 회전에 따라 침대는 저 멀리 뒤쪽으로 물러서 가질 않는가.
“어머, 이걸 보세요. 욕실이 아예 호텔 밖으로 빠져나왔어요. 이걸 어째…”
조금이라도 가까운 거리에서 랠리경기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인가? 혹은 원초적인 자극을 주기 위하여 야외에서 목욕하는 기분을 즐기라는 것인가? 하여간 리모컨 작동에 따라 욕실 자체가 호텔 밖으로 삐져나가더라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니 욕실이 회전하는 동안 어느새 수증기가 차올라 투명유리 전체가 뿌옇게 변해버린 상태였다. 아! 그렇구나. 보일 듯 말듯, 모두 내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히 가려주는 기술!
“아! 멋지군. 안개를 타고 내려온 선녀가 따로 없어요. 나도 그리로 들어 갈 테니 잠시 기다려요. 이거 바지가 왜 이렇게 안 벗어지나.”
마음이 급해져서일까? 바짓단에 한쪽 다리가 걸려 깽깽 걸음을 걸으면서 강준호가 욕실로 내달려 왔다. 낙상을 당한 노인네들 중에 절반 이상이 팬티를 벗다가 다리가 걸려 깽깽 걸음 끝에 넘어졌기 때문이라더니, 강준호가 딱 그 꼴이었다. 이미 벌거숭이 상태인 신희영은 반쯤 거품에 가려진 채로 흠뻑 젖어있었다. 팔선녀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더운 물과 수증기로 인해 그녀의 주위는 자욱한 안개… 안개!
“물에 흠씬 젖어서인가? 환히 트인 야외에서 보니 당신 몸이 야생마처럼 멋지군요. 이렇게 아름다운 몸을 지닌 줄 미처 몰랐소.”
강준호는 여덟 줄기 폭포를 헤치며 들어와서는 두 손으로 덥석 그녀의 젖가슴부터 움켜쥐었다. 단지 움켜쥐기만 했을 뿐인데 그녀의 숨소리가 별안간 색색 가빠지기 시작했다. 하긴 분위기에 따라 감각이 변한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라제니 누드 골프장에서는 옷을 벗은 채로 쪼그려 앉기, 허리 구부리기, 만세 부르기 등등 별의 별 짓을 다해도 꿈쩍 않던 그의 지겟작대기에도 슬슬 반응이 오기 시작했으니.
“아! 아!”
역시 분위기 탓일까? 신희영이 참을 수 없다는 듯 신음을 토해냈다. 하긴 참기 어려웠다. 백주대낮에, 사방이 탁 트인 허공에서… 그러니까 위로는 푸른 하늘이 보이고 발아래로는 쌩쌩 내달리는 자동차와 느릿느릿 거니는 사람들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옷을 홀랑 벗고 샤워를 하며 상열지사를 벌이고 있으니 어찌 참을 수 있을까.
“저 사람들 틈에서 우리가 마치 공연을 벌이는 것 같구려.”
“알몸으로 공연을 벌이긴 평생 처음예요. 그래서인가요? 마구 마구 흥분되는 걸요?”
“나 역시 그렇군요.”
강준호는 감격한 상태에서 그녀의 허리를 살짝 끌어당겼다. 그 바람에 여덟 갈래 가느다란 폭포 사이로 안개가 잠시 걷히더니 봉긋한 그녀의 젖가슴이 확연히 드러났다. 강준호는 입을 딱 벌리고야 말았다. 그 미묘한 아름다움, 그 야릇한 분위기에 질식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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