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금융계좌신고제 시행
실제 신고는 10%에 불과
역외탈세 규모 900억弗 추정
탈법적 富의 세습 근절해야
이현동 국세청장이 걱정스럽다. 기운이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는 지금 역외탈세와 전쟁 중이다. 하지만 연일 카운터펀치를 맞고 있다. 신년 벽두부터 구리왕 차용규 씨에 대한 역외탈세 추징이 수포로 돌아갔다. 선박왕과는 여전히 법정투쟁 중이다. 지난해 초 역외탈세와의 전면전 선포 당시 발표했던 세수 1조원 목표는 벌써 물 건너갔다. 국회에서 소리만 요란했다고 질타를 받은 것도 여러 차례다.
그럼에도 올해 역시 그가 가장 집중해야 할 일은 역외탈세와의 전쟁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엄청나게 늘어난 규모다.
역외탈세범들의 조세피난처로 활용된다고 분류되는 나라는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라부안) 등 62개국에 달한다.
지난 2010년 이들 조세피난국에 우리나라 30대 그룹(공기업 제외)은 26개의 신설법인을 만들었다. 모두가 절세와 경영효율을 위해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 역외탈세의 지렛대 노릇을 하는 페이퍼컴퍼니가 존재할 게 분명하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분명하다. 실적도 그걸 말해준다.
이들 나라에 대한 우리나라의 지난 2010년 수입대금 지급액은 1317억달러다. 하지만 수입신고는 428억달러에 불과하다. 차액이 889억달러나 된다. 약 100조원이다. 우리나라 예산의 3분의 1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돈이다. 2006년엔 차액이 554억달러였다. 4년간 기하급수적 증가세다.
물론 이 돈이 다 탈세용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일 가능성은 높다. 지난해 6월, 정부는 해외금융계좌신고제도를 시행했다. 10억원 이상의 해외계좌를 보유한 개인이나 법인은 모두 이를 신고해야 한다. 당초 국세청은 신고해야 할 대상이 2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파악하고 모두에게 통보했다. 하지만 실제 신고는 10% 정도였다. 금액으로도 11조원 남짓이다. 결국 90%는 아직도 계좌를 감추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정부는 2007년부터 역외탈세에 대한 대대적인 추적작업을 진행 중이다. 여기에 임하는 자세는 가히 국가적 재난대책 수준이다. 비밀주의의 대명사 스위스의 은행들마저 손을 들 정도다. 미국인 탈세를 도운 혐의로 스위스 자산관리전문은행 베겔린의 직원 3명을 기소했다. 베겔린은 2009년 스위스 최대은행 UBS에 200억달러의 탈세를 도왔다는 혐의로 7억80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크레디트스위스은행은 지금 수사 중이다.
대부분 수천 개의 고객계좌를 넘겨주고 일정 기간 미국 정부의 모니터링을 허용키로 했다. 역외탈세범들에겐 곧 엄청난 규모의 세금 추징이 이뤄질 게 분명하다.
미국은 역외탈세로 인한 세수 손실을 연간 1000억달러 정도로 본다. 거의 900억달러에 달할 걸로 추측 가능한 우리의 역외탈세 규모도 미국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국세청이 벌이는 역외탈세와의 전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비단 세수 증대 목적뿐 아니라 탈법적인 부의 세습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쇠는 달궈졌을 때 두드려야 한다. 지금이 그때다. 유럽연합 각국과 G20 정상회의에서도 조세피난처에 대한 단속을 외치고 있다. 우리도 한배를 타야 한다. 그야말로 편승이 필요한 때다.
kw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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