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남성들을 수집하는 여성’ (Collectionneuse de beaux males)
파리의 가장 유명한 매음굴 중 하나의 정면에 위치한 에로틱예술 전문 미술관 ‘오 보뇌르 뒤 주르(Au Bonheur du Jour)’가 개관 10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한 전시회는 부드러운 눈과 건장한 사지를 보유한 남성들 사진, 과슈, 연필화 400장을 집대성하고 있다.
‘오 보뇌르 뒤 주르’는 샤바네 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거리 이름은 각별하다. 예전에이 거리에 남자 손님들과 때때로 여자 손님들을 받아들이던 고급 매음굴 ‘르 샤바네’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창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크리스티앙 마르모니에는다음과 같이 말한다. “르 샤바네는 사례별로 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여성들이 대부분 부르주아지 계급 출신이었기에, 비밀을 철저히 유지하는 조건으로 그들은 아주 비싸게 돈을 지불했지요. 광기의 시대 이전에는 여성들 동성애가 사회의 미풍양속에 의해 전혀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여성 고객이 매음굴에서 무얼 찾아 애썼던 것일까요? 그녀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여성 동성연애자와 즐거움을 나누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돈 많은 남성들을 겨냥한 파티에 대해 기술한글을 읽어보면, 부유한 여성 역시 이 자리에서 가짜 승려에게 몸을 맡기고 자신의 발을 젊은이들이 핥도록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르 샤바네는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 보뇌르 뒤 주르’는 티노 로시, 캐리 그란트, 마를렌 디트리히, 장 가뱅 등 당대의 대스타들이 목과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매음굴을 드나들었던 시대에 대한 추억을 영원히 이어가고 있다.
스타들을위하여 원-투-투, 스핑크스, 혹은 르 샤바네 같은 장소들이 방들을 영화무대처럼 장식했기에, 사람들은 베니스에서 육체관계를 맺을 수도, 곰 가죽이 깔린 이글루에서 빙산에 애액(愛液)을 흘릴 수도, 열차 침대차 안에서 사랑을 나눌 수도, 혹은 누워서 식사하는 식탁이 놓인 로마제국 분위기에서 사랑을 나눌 수도 있었다.
매음굴이 사라진 1946년 4월 13일 이후 손님들은 사라졌지만, 기억조차 없애지는 못했다. ‘오 보뇌르 뒤 주르’ 미술관에는 이 시대를 보여주는 물건들이 존재한다. 매음굴 입장권이라든지 창녀들 초상화가 그것이다. 화랑 여주인인 니콜 카네는 학술적인 연구를 위한 나신, 1940대의 일본 본디지, 뮤직홀의 미소년들, 오토만의 창녀들 등을찍은 에로틱 사진들을 엄청나게 소장하고 있다.
보물들 중에서 남성들의 나신 사진이 많다. 니콜 카네는 그 사진들을 좋아한다. “나는 20여년 전부터 남자들 사진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시회는 400장에 달하는남자들 사진과 데생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의 아이콘이었던 카우보이, 수사관,마도로스, 투우사 사진이 주를 이룹니다.
아름다운 남성들은 사우나, 바, 디스코텍 등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약간 특별하지요?” 이 미술관에 들어서면 니콜의 향수 냄새를 먼저 맡을 수 있다. 빨간색 비로도로 장식된 벽에는 외설스러운 사진들을 분류한 파일들이 정리돼 있다. 시선은 난교파티 혹은 매의 눈을 한 미소년들 이미지 쪽으로 고정된다.
“내가 아직 보여드리지 않은, 장롱 속에서 잠자고 있는 이미지들이 많아요. 나는 거의 강박적으로 에로틱 이미지들을 수집합니다. 나는 아름다운 남성들을 좋아합니다. 전시회에서는 털북숭이 모습을 많이 발견할 겁니다. 예전에는 오늘날보다 훨씬 자연스런 모습이었거든요. 당시에는 포토숍도 없었지요.” 전시회는 ‘남성성을 이상화시킨’ 작품들만 모으고 있는데, 중심 작가의 이름은 콰인턴스(Quaintance)이다.
그는 게이미술의 선구자다. 탐 오브 핀란드(Tom of Finland) 이전에, 이 미국 예술가는 사진을 통해 소년들의 아름다움을 찬양했고, 그들의 엉덩이를 벌리거나 둔부 위에 손을 올리게 했으며, 혹은 엉덩이를 하늘로 향한 채 벗은 몸으로 길게 눕게 만들었다.
니콜의 설명이다. “콰인턴스는 1950년대에 아주 유명했던 동성애자였습니다. 예술이 동성애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던 초기의 아이콘이었지요. 그는 1902년 6월 3일 태생입니다. 그의 조상들은 모두 농부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콰인턴스는 예술을 택했습니다.
그는 먼저 무용을 배웠고, 매 웨스트, 디트리히, 글로리아 스웬슨, 릴리 퐁스의 아파트를 장식했으며, 화가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성당의 그림까지 그렸지요! 어머니의 요구에 따라, 그는 벌거벗은 채 그리스도 발 밑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유화로 그렸습니다.
현재 미국 버지니아 주에 소재한 스탠리침례교회가 소장하고 있는 이 그림은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림입니다. 다른 그림들은 수집가들이 노출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콰인턴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이 작가가 초창기 동성애 잡지들을 위해 찍었던 사진들뿐입니다.”
1951년에 콰인턴스는 밥 마이저가 운영하는 ‘피지크 픽토리알’의 표지사진을 담당했다.니콜 카네가 ‘유토피아적’이라 명명한 그의 세계는 완벽한 몸매를 보유한 글래머 남성들의 세계이다.
* 콰인턴스 전시회는 2009년 5월 2일까지 열렸으며, ‘오 보뇌르 뒤 주르’는 파리 제2구 샤바네 거리 11번지에 소재해 있다.
(이미지는 콰인턴스 50년대 컬렉션)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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