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뒤면 잊혀지겠죠, 뭐….”

2007년 모 그룹 회장이 폭력사건으로 입건됐을 때, 그 회사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입건된 당시야 회사가 발칵 뒤집혔지만 1~2년 후면 없던 일처럼 된다고도 했다.

돈있고 힘있는 자가 지위와 부를 이용해 지위가 낮고 가진 게 부족한 사람에게 억압적 행위나 정당하지 못한 행위를 해도 되느냐고 묻는다면 모두 ‘아니다’고 대답할 것이다. 다만 ‘회장님’이라면 답을 하지 않을지 모른다. 반재벌 정서가 강하다지만 드라마 속 재벌을 동경하고, 이익만 챙겨준다면 재벌에 의외로 관대한 게 우리 사회다.

1년 늑장 공시로 시장을 뒤흔들었던 한화는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주가가 되레 더 올랐다.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거래정지가 없었던 것도 이를 도왔다는 분석이 많다. 다른 혐의도 아니고 회사, 즉 주주에게 손해를 입힌 배임ㆍ횡령 혐의다. 늑장 공시에 대한 도덕성 논란은 뒤로 하더라도 계열사와 소액주주, 채권자 등에게 손해를 입힌 행위다.

회삿돈을 빼돌려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힌 대기업은 또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도 약 2000억원대의 횡령 및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도 지난해 12월 회삿돈 274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으로부터 불구속 기소됐다. 모두 투자자에게 손해를 입힌 행위임에도 시장의 제재는 없다.

한화가 공시한 횡령ㆍ배임 혐의 발생금액은 자기자본 대비 3.9%에 해당하는 899억원으로, 금액이 적지 않지만 당장 회사가 망할 수준은 아니다. SK나 금호 역시 글로벌 기업으로 자기자본이나 매출 대비 기업의 계속성을 해치지 않는 수준이다.

그래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나쁜 행위’가 너무 쉽게 잊혀진다. 기업도 투자자도 이를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여기에 대한 제도적 안전망 마련이 미흡해 악순환이 계속되는 모습이다.

우선 투자자 보호에 대한 정의를 새로 쓰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기업의 가치를 올바로 판단해 투자에 도움을 주는 것만이 보호가 아니라, 그들이 투자대상으로 정한 기업의 경영이 투명할 때 진정한 투자자 보호가 이뤄지는 게 아닐까.

선진국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어떻든 ‘돈 잘 버는’ 기업에만 투자하는 문화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시장에는 심장이 없지만, 투자자에게는 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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