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 끝까지, 죽을 때까지 (53)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몬테카를로 랠리가 끝나기 직전, 진정으로 랠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결승선 근처에 모여 있게 마련이었다. 결승선 앞에 나서지 못할 경우에는 최소한 달리는 머신의 모습을 멀리서라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샴페인을 마시거나 커피를 홀짝이곤 한다. 그러면서 선수들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기쁨을 함께 즐기는 것이다.
해변 도로를 향해 열려있는 카페나 호텔, 술집 등등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새로운 챔피언의 탄생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조바심 속에서 선수들의 승패를 즐긴다고나 할까? 그러나 단지 몇 번째로 들어왔느냐를 즐기자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부서지고 상처 난 머신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산악지역의 날씨를 헤치고 돌아온 선수들의 투지와 인내를 함께 느끼거나 헤아려보곤 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들 중에서는 그나마 신희영과 강준호가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꼴찌로 기어 들어오면서 개망신을 당해야 할 텐데… 안 그래요?”
“혹시 포기했는지도 모르지. 아예 포기하면 결승선에서 당하게 될 국제적 망신을 피할 수는 있을 테니까.”
“그러면 안 되지요. 꼴찌로 기어 들어오는 모습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 직성이 풀린다고요. 신문사에 사진이라도 돌려서 그 꼴을 전국에 광고하면 좋으련만.”
그 중에서도 특히 신희영의 감상목적은 불손하기 짝이 없었다. 자길 배신하고 남편 유민 회장의 뜻에 따라 드라이버가 된 아들 유호성! 그가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을 즐기며 감상하기 위해서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있는 중이었다. 부릅뜬 눈!
하지만 진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결승선을 노려보는 사람은 권일주… 1974년 산 치타를 모는 권도일 선수의 부친이었다. 신희영은 결승선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초특급 호텔의 객실 침대에 폼나게 엎드려서 샴페인을 홀짝이는 중이었고, 권일주는 찬바람이 부는 부둣가 결승선 바로 옆에 휠체어를 타고 나와 앉아 있다는 것이 서로 다른 점이라고나 할까.
“잘 봐라. 내 아들 도일이가 죽지 않고 나타나는지… 잘 봐.”
“네, 아버님. 똑바로 보고 있어요.”
“혹시 나타나지 않더라도 슬퍼 말아라.”
“네… 아버님.”
아버님이라고? 이게 어찌된 일인지… 하반신 불수인 권일주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 사람은 바로 유한솜이었다. 아하! 그녀는 기꺼이 현대판 낙랑공주, 혹은 현대판 쥴리엣이 되기로 작심한 모양이었다. 제 발로 적진에 찾아 들어가 자명고를 찢은 낙랑공주나, 원수의 아들을 사랑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쥴리엣이나 애틋하기는 매한가지. 권일주 역시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애틋한 눈빛을 감출 수 없었다. 몬테카를로 랠리는 발랑스에서 비롯된 야간스테이지를 기점으로 17개의 스테이지가 이어져 운영되는 챔피언 경쟁이다. 모나코의 유명한 ‘콜 드 투리니’를 포함하여 알프스 연안의 고전적인 스테이지를 4차례나 거치고, 모나코 그랑프리 서킷을 이용한 환상적인 슈퍼 스페셜 스테이지를 통과해야만 하는 스릴, 서스펜스! 하지만 1974년 산 치타를 이끌고 참전한 권도일에게는 복수의 과정이 추가되어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살아서 결승선에 들어와도 기뻐할 필요가 없다.”
“그렇군요. 아버님.”
권일주의 말을 들을 때마다 유한솜의 심정은 착잡해 지기만 했다. 랠리 경기 중에 일부러 사고를 유발하여 상대를 죽이려 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또 있을까? 자칫 실수하면 본인이 죽을 수도 있는 것. 그러니 결승선에 누가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서로 간에 그 생사를 알 수 없는 것. 결승선에 권도일이 나타날지 유호성이 나타날지 알 수는 없었지만, 둘 다 잃어서는 안 될 사람이란 것은 분명했다. 한 명은 사랑하는 X오빠, 다른 한 명은 친오빠이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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