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다시 ‘멜로’ 전성시대다. 7월 현재까지 2016년 안방극장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태양의 후예’(KBS2)부터 방송 중인 ‘닥터스’(SBS)에 이르기까지 ‘멜로’로 대동단결이다.
지난 몇 해간 TV 드라마에서 ‘멜로’는 천덕꾸러기였다. 장르를 아무리 변주해도 시청률이 주춤한다 싶으면 ‘멜로’로 귀결되는 탓에 ‘기승전멜로’라는 비난이 따라왔다. ‘법정에서 연애하는 드라마’,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라는 조롱이 나온 것 역시 이같은 이유에서다.
한 방송사의 고위 관계자는 “TV는 속성상 30~40대 여성 시청자를 외면하고 갈 수가 없다”라며 “이들 세대를 겨냥하기 위해서는 드라마에 멜로 코드의 접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멜로’가 여성 시청자들에게 강세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한동안 ‘멜로드라마’는 외면받았다. 구태의연한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가 동시대 여성과는 동떨어져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드라마에 빠지지 않는다’는 소위 ‘백마 탄 왕자’와 신데렐라, 혹은 캔디형 여주인공의 로맨스가 주를 이뤘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여성 시청자 대다수가 재벌2세와 캔디렐라(캔디+신데렐라)형 여주인공의 사랑은 비현실적이고, 현실 불가능한 로맨스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급간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계층을 뛰어넘는 로맨스는 ‘현실성 없는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대두됐다.
지난해 인기를 모은 몇 편의 로맨틱코미디 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안방을 찾은 드라마는 “현실감각을 잃지 않는 로맨스”(윤석진 교수)로 반응이 뜨겁다. 재난현장에서의 멜로(태양의 후예)는 물론 병원에서의 멜로(닥터스)까지 이들 드라마는 공통점이 나온다. ‘캔디렐라’로 대표됐던 여성 캐릭터의 변화가 그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태양의 후예’, ‘또 오해영’, ‘닥터스’에 이르기까지 최근 성공하는 드라마에는 멜로와 일이 엮여있다”고 봤다. “일 안에서 성공을 거두는 성장스토리(닥터스)이거나,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멜로로 풀어내는(또 오해영) 방식”이다. 이 안에서 여주인공은 “사랑과 일에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던 과거와 달리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윤석진 교수)으로 그려지고 있다.
멜로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는 현재 이 장르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30~40대 여성 시청자들의 정서를 반영한다.
한 방송사의 편성기획팀 관계자는 “TV 시청자가 나날이 고령화되고 있다지만 로맨틱코미디 물의 경우 20대부터 40대 여성 시청자의 수요가 줄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tvN 역대 드라마 시청률 4위를 기록한 ‘또 오해영’의 성공 역시 30대 여성 시청자를 TV 앞으로 불러모은 데에 있다. 이 관계자는 “현재 20대 후반부터 40대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들이 부쩍 늘었고, 사회진출이 당연시 되고 있다”라며 “일과 사랑이 공존할 수 밖에 없는 세대다. 로맨스를 그리면서 직장생활이나 일에 대한 요소가 들어가야 더 많은 공감대를 불러온다”고 설명했다.
다시 찾아온 ‘멜로’의 인기의 이유는 드라마 소비주체의 여성 시청자들의 동시대성을 반영한 캐릭터를 통해 무겁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정서를 담아냈다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캐릭터를 통한 공감과 더불어 현실의 불안을 어루만지는 따뜻함으로 위안을 주고 있다.
최근 종영한 ‘또 오해영’에선 너무도 평범해서 ‘흙수저’가 된 여주인공 오해영에게 많은 여성 시청자가 공감했다. 애틋하기 그지 없는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캐릭터였다. 방영 중인 SBS ‘닥터스’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학창시절 문제아에서 의사가 된 여주인공의 성장스토리를 멜로와 엮었다. 여주인공의 나이는 서른둘, 직업은 의사이나 가진 게 없어 스스로 모든 것을 짊어지는 캐릭터다. 그의 곁에는 “너무 강해지지 말라”고 말하며 멘토의 존재가 돼주는 남자주인공이 있다. “힘들고 외로울 때 나를 지켜봐주고 도와주는 존재에 대한 갈증”(윤석진 교수)이 남녀 주인공의 관계를 통해 해소된다.
이들 드라마는 “사람과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방편으로 사랑의 감정을 활용”(윤석진 교수)했다. 지금 이 시대의 여성 시청자들이 가지는 “사람냄새 나는 따뜻한 이야기에 위로받고 싶은 욕구”(정덕현 평론가)가 반영돼 “서로 위안을 주고 격려해주는 사랑이 실종된 시대에 본래적인 모습의 멜로를 그려 현실의 고단함을 치유”(윤석진 교수)하고 있다. 결국 사랑이야기일 뿐인데도 ‘태양의 후예’를 비롯해 ‘또 오해영’, ‘닥터스’ 등의 드라마가 공감과 대리만족의 주인공이 된 이유다.
전문가들은 올 한 해 불어닥친 멜로드라마의 인기가 유달리 뜨거워지자 ‘멜로 중독’이라는 촌평도 내놓고 있다. 20~40대 여성시청자들이 일상의 피로함을 벗고 일탈하는 매개로 ‘멜로드라마’를 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윤석진 교수는 ”답답하고 되는 일 없는 현실, 어렵고 힘든 날들에서 일탈해 판타지를 가질 수 있는 힘”에 멜로드라마가 있었다고 봤다. “고단한 현실을 버틸 에너지를 얻기 위해 순수한 사랑을 그리는 멜로드라마에 여성 시청자들이 빠져든다“는 해석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현실 자체가 무겁고 힘들기 때문에 진지하고 무거운 터치의 멜로보다는 밝고 경쾌하면서도 따뜻한 정서를 담은 멜로 드라마를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위로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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