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바람 부는 길(28)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그날 오후, 인터넷을 비롯하여 신문, 트위터 등을 뜨겁게 달군 소식은 바로 국제대회 스키장을 휘젓던 ‘토플리스 여인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사진과 글이 검색어 1위에 오른 것은 엄연한 사실. 하지만 내용부터가 뜬금없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를테면 개념 없고 무식한 노출증 환자의 대표이미지로 급속히 퍼져나갔으므로 강유리와 유한솜은 무척 당황스럽기만 했다.
“난 몰라! 이 사진에도 가슴만 나왔어. 플래카드 구호는 뵈지도 않아.”
플래카드는 아예 잘려나갔고… 만인의 눈길을 끌기 위해 과감히 벗어젖힌 젖가슴 부위에는 바둑판과도 같은 스크린 처리가 되어 있었으니 꼴불견도 그런 꼴불견이 없었다.
“그러게 말예요. 우리 모두 백주대낮에 브래지어 벗고 스트리킹이나 하는 정신병자가 되어버렸어요. 가리려면 차라리 얼굴을 가릴 것이지 남의 예쁜 가슴을 왜 가려? 신문사에 항의라도 해야 할까 봐요.”
“잘못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구호를 가슴에 직접 써야했다고, 보디페인팅 말이야.”
“하지만 스키 타고 달려 내려올 땐 기다란 플래카드가 멋졌어요. 뒤로 글씨가 펄럭이는 것이… 영화장면 같았다니까요?”
“현장에서만 멋지면 뭐해? 신문에 멋지게 실렸어야지.”
유한솜은 강유리를 위로했다. 하지만 강유리는 친아버지의 비리를 가차 없이 들춰내는 유한솜의 결벽성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실망스럽긴 둘이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골프선수로서의 입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타이거 우즈까지 들먹인 사실, 혹은 사랑하는 남자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서 친아버지의 비리까지 들춰낸 사실이 밝혀져 세상이 온통 시끄러워 지길 그들은 원했었다. 그런데 기껏 노출본능을 참지 못해 스트리킹이나 벌인 ‘몸살녀’ 취급이나 받다니…
대략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사람들 생각은 달랐다. 신문 사회면 구석에 실린 사진, 젖가슴 부분이 스크린 처리 된 두 여인의 사진을 영사막에 띄워놓고 진지하게 토론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저 앳된 여자아이가 유민 제련그룹 회장의 막내딸 유한솜이란 말입니까? 확실해요?”
“확실합니다. 지금 당분간 휴학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머니를 따라서 세계일주 골프투어를 하다가 잠시 귀국한 모양입니다.”
“딸이 아버지를 고발해? 이목을 끌려고 옷을 벗은 채로… 정신 나간 애 아닙니까?”
“작년에 베트남 내해에서 바다로 뛰어든 노인이 있었지요? 권일주라고… 아마 그 노인의 사주를 받은 모양입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뭔가 깊은 사연에 얽힌 모양이로군요. 하지만 잠시 두고 봅시다. 베트남 그 사건으로 유민 회장의 코를 확실히 꿴 것만으로도 만족하니까요. 유민 그 친구… 우리 요구에 따라서 5개국을 관통하는 랠리대회를 유치하느라고 애 좀 먹고 있을 겁니다.”
“이번에 랠리머신들이 북한을 통과해서 달리기만 하면 선거에선 확실하게 승리합니다. 제가 장담하지요.”
“유민이가 북한의 고위층에 줄을 대고 있다지요? 그런데 그거 국가기밀 아닌가?”
“공공연한 비밀 아닙니까? 랠리 머신이 평양을 통과할 수 있도록 북한 고위층의 동의만 얻어낸다면 이번 선거에서 우린…”
“조용! 목소리 좀 낮추세요.”
유민 회장이 베트남 내해에서의 살인 미수사건에 연루되었을 때 단 한 번의 독대로서 사건을 해결해주었던 그 사람… 여당 대권주자의 친서를 품고 다니던 킹 메이커, 이른바 ‘높은 양반’이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수시로 유민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니터링 하던 중에 스키장에서 벌어진 해괴한 노출사진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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