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바람 부는 길(37)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비밀이란 원래 새나가는 것을 전제로 하는 비효율적인 약속이라고 하지 않던가. 모두의 입에 자물쇠를 채워도 조용히 퍼져나가는 것이 비밀의 속성이므로… 거성의 재벌가와 이스라엘 Urban 사와의 비밀이 영원히 지켜지길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근래에 전화선에서 이상한 소리가 자주 나곤 했나요?”
“아뇨, 그런 적 없습니다.”
“집무실 물건들이 뒤죽박죽 된 적은 없었나요?”
“전혀 없었습니다.”
“전기 콘센트나 스위치에서 반짝반짝 불빛이 일었던 적도 없었고요?”
“네, 수상하게 여길 만 한 아무런 단서나 조짐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불법도청을 당한 것도 아닌데… 정치권의 높은 양반이 우리와 이스라엘 Urban 사와 맺은 기밀사항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이스라엘 정보국에서 개입한 흔적도 없지 않습니까?”
“그 무섭다는 모사드 말입니까?”
대화를 나누는 거성의 재벌2세와 송달민의 표정이 제법 어두웠다. 그들은 비즈니스살롱 특별실에서 안주도 없이 양주잔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가 개입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판국이니만큼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혹시…”
“왜요? 뭐 짚이는 거라도 있습니까?”
“그게 말입니다, 얼마 전에… 제 방에 인테리어 설비공 두어 명이 다녀간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 회사에 그런 인테리어 업자가 드나들 까닭이 없군요. 제가 모르는 내용에 대해서 외부 업자가 드나드는 것은…”
“도청된 것이 확실합니다. 당장 회사로 가서 방을 체크해 봅시다.”
“지금요? 약주 드시다 말고?”
“어서 일어나세요. 내 방에 배터리로 작동되는 것이 뭐가 있는지, 그리고 콘센트에 뭐가 꽂혀있는지부터 당장 확인해야겠습니다.”
재벌 2세는 직접 승용차를 몰아 급히 회사로 향했다. 그는 정치권의 높은 양반이 자기의 방을 도청했다고 확실히 믿는 모양이었다.
“보통 문제가 아니로군요. 불법도청장치를 제거하려면 사무실 내부를 온통 뒤집어엎어야만 합니다. 차라리 방을 옮기는 편이 쉬울지도 몰라요.”
재벌 2세는 혀를 끌끌 차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긴 가슴이 답답할 만도 했다. 전기콘센트, 창문, 커튼, 벽걸이 정도야 뒤지거나 탈탈 털어내면 그만이지만 벽면이나 천정, 양탄자 밑 부분, 가구, 특히 서재형식으로 꾸며진 책 속에 도청장치가 숨겨져 있다면 어떻게 그걸 찾아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화분의 흙도 모두 쏟아보라고요. 책상, 의자, 테이블… 이런 건 전부 뒤집어 봐요. 책? 그거… 천 권쯤 되나요? 상관없습니다. 전부 밖으로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보세요. 에어컨 속도 뒤지고, 방문도 뜯어서 안을 살펴보세요. 일단 육안으로 확인한 뒤에 도청장치를 찾아내는 전자 장비를 구해서 다시 점검하세요.”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그는 총무팀에 지시를 내렸다. 점점 화가 치솟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방문이라도 뜯어내라는 것을 보니 확실한 물증을 찾아내야 한다는 사명감에 젖어드는 중인지도 몰랐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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