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1. 1998년 김우중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은 DJ정부 출범 8개월을 맞아 특별지시를 내렸다. 6개 민간경제연구소로 하여금 DJ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게 한 것이다. 거시경제 운용, 기업구조조정, 노동, 중소기업 정책 등 정부의 정책에 날선 비판이 담긴 이 내용은 폭풍을 일으켰다.

#2. 2003년 1월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 당선자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때. 손병두 당시 전경련 부회장은 아침 방송을 통해 새정부의 재벌정책에 직격탄을 날렸다.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해체, 대기업과 재벌의 분리 등 노 당선자의 핵심공약에 정면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전경련은 곧바로 ‘미운털’이 박혔다.

대기업을 회원사로 둔 전경련은 이처럼 할말은 해왔다. 기업과 재계 총수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해왔다. 그러나 지금 이같은 일은 ‘전설(Legend)’에나 남는 일이 됐다. 선배들이 쌓아왔던 무장(武裝)은 언제부터인가 해제됐고, 스스로도 전투력을 놔 버렸다. 혹자는 말했다. “야지(野地)에서 투쟁하는 것보다 온실 속 화초가 됨으로써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는 비겁함에 취하게 됐다”고.

MB정부가 표방한 비즈니스프렌들리의 공약에 취한 탓도 있다. 재계와 정치 속성이 ‘불가근불가원’임을 잊은채 ‘아삼육’의 맛에 빠져든 것이다.

소득은 별로 없었다. 4년반 동안의 대기업 공격에 침묵과 방관, 인내로 일관해왔지만 얻은 것은 글로벌경제 위기가 가져다 준 경영 위축과 다가올 ‘대기업 때리기’의 폭풍 공세다. 괜한 해코지는 역풍이 뒤따르기에, 정부와 친하면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안전심리가 가져다 준 초라한 결과물이다. 대기업조차 전경련 무용론을 제기했고, 전경련이 좌불안석이 돼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같은 전경련에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정치권에 각을 본격적으로 세우고 있는 것이다. ‘할 말은 했던’ 옛 위상을 찾자는 것으로, 너무 비겁했다는 자성론이 투영돼 있다. 물론 글로벌경제 위축과 정치권의 포퓰리즘과 맞물려 사상 최대의 경영위기 코너에 몰린 대기업을 대변할 때가 왔다는, 더이상 실기(失機)해선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전경련의 현주소가 반영된 것이다. 역시 4년반동안 침묵해왔던 재계의 반란 흐름이 전경련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전경련 관계자는 “대기업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며 ‘옳은 말은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경련에 없었던 것은 아니며, 다만 묻혀왔던 것”이라며 “대선정국을 앞두고 전경련 색깔을 내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포퓰리즘 정국을 견제한 전경련의 반재벌정책 비판의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규제입법 모니터링에 나섰고, 함구해왔던 비정규직 문제의 허상을 조목조목 짚었고, 전력대란 주범으로 몰리는 기업의 억울함도 항명했다.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앞세워 복지포퓰리즘 견제구도 이미 날렸다. 특히 전경련은 정치권발(發) 소모적 논쟁을 접고 사회통합 정책을 유도키 위해 한경연 산하에 사회통합센터를 설치해 주목된다.

물론 이같은 포퓰리즘 감시가 전경련의 옛 투사로서의 야성(野性)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눈치 보는 버릇은 여전하다. 규제입법과 관련해 박지원 민주통합당 대표의 칼날 공격이 나오자 곧바로 침묵한 게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해도 ‘대오각성’을 한 전경련이 깊은 잠에서 빠져나온 것은 향후 대선정국에서 대기업, 재계의 목소리 톤이 강력하게 뿜어져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간단치 않은 행간이 존재한다.

10대그룹 임원은 “현 허창수 회장-정병철 부회장 체제 하에서 전경련이 목소리를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행히 최근 개선 조짐이 보이는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말도 안되는 반재벌정책이 봇물 터지듯 쏟아질텐데, 최악의 상황에선 ‘시국선언’이라도 할 수 있는 전경련이 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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