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 붉은 길, 푸르른 마음 (51)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인도양 상공 수천 피트 위를 날던 비행기에서 벌어진 사건의 전말이 서울시 강남구 부자마을에 주소를 둔 유민 회장의 스마트폰으로 전달되기까지는 불과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놀라운 세상이었다.
마치 피뢰침 속으로 벼락이 빨려들듯 이상야릇한 동영상 한 편이 유민 회장의 전화기 속으로 빨려든 시각은 아직 이른 아침, 근심걱정으로 인해 잠을 못 이루고 밤새 뒤척이느라 눈이 퉁퉁 부어있던 즈음이었다.
“어머, 남에게 들키기 전에 내가 먼저 이곳을 빠져 나갈게요. 그 다음에 오빠는 저 비상벨을 누르시면 돼요.”
“유리야, 나만 이렇게 두고 가면 어떡해? 제발 살려주라. 응?”
“몰라요, 오빠가 알아서 해! 진짜 되는 일이 없네…”
띵동! 하는 차임벨 소리와 함께 배달 된 동영상은 화면이 켜지자마자 리얼한 대화부터 쏟아내고 있었다. 잠시 아래위로 떨리던 화면이 제자리를 잡았을 때 그걸 무심코 들여다보던 유민 회장의 눈에서는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눈을 씻고 다시 들여다본들 사진 속의 주인공이 바뀔 리야 없지. 비행기 기내 화장실에서 티격태격하는 주인공들은 분명히 유호성과 강유리였다. 리얼한 대화를 통해 들려오는 이름도 확실히 ‘유리’였던 것이다.
“이 유리가… 그 유리 맞아? 그리고… 변기에 낀 이 녀석이… 그 녀석 맞아? 내 아들 녀석 호성이가 맞냐고?”
열을 받다보면 거울에 대고도 화를 내는 법이다. 유민 회장은 이불장에 달려있는 전신거울을 향해 이렇게 벅벅 소리를 질렀다.
“이거 어떤 놈이 보낸 거야? 얼마를 원해?”
역시 산전수전 다 겪어낸 인생 9단들은 대처방식부터가 달랐다. 즉석에서 상황 판단을 하고 곧 돈으로 연결시키는 순발력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순발력이 좋은들 이불장에 붙은 거울이 대답해줄 리는 없었다.
“일단 1억부터 시작을 할까?”
텔레파시가 통했나? 유민 회장이 이불장 거울 앞에서 혼잣말로 분통을 터뜨리던 바로 그 순간에 인도양 수천 피트 상공을 날던 비행기 1등석 화장실 앞에서는 약속을 어긴 파파라치가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대고 있었다.
강유리에게 약속한 것과는 딴 판으로 그는 동영상을 양쪽으로 날려 보내 동시상영을 유도했던 것이다. 우선 여자 주인공 강유리의 매니저에게 보내고… 즉시 남자 주인공 유호성의 아버지 유민 회장에게도 보내고…
“강유리 선수는 아직 주머니가 얇을 테니 1억부터, 하지만 유민 회장에겐 3억부터 시작해 볼까?”
파파라치도 궁리가 많은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이 세상은 맹수와 초식동물이 얽혀 사는 자연농원의 사파리와도 같았다. 언뜻 보기에는 질서정연하고 구석구석 잘 다듬어진 것 같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호시탐탐 맹수가 발톱을 세우고 있는 그런…
동영상을 연거푸 두 번이나 돌려 본 유민 회장은 길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동영상 여주인공만큼이나… 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높은 양반에게 잘려 레이싱 사업을 홀랑 빼앗기고, 티파니까지 꼬여서 데리고 간 양은혜에게도 바람맞고, 이혼하리라고 벼르는 아내에게는 재산분할 청구서나 날아오고…
유민 회장은 이 동영상을 보낸 작자와 빠른 시일 안에 만나야만 할 것이란 직감에 빠져들었다. 언젠가 불장난처럼 스쳤던 강유리와의 스킨십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자칫하면 아들 유호성과 연적관계가 성립될 수도 있었으니… 마음이 영 불편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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