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붉은 길, 푸르른 마음 (4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매니저 백광돌의 스마트폰에서 삐익~ 하는 전자음이 울렸다. 파파라치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사진을 전송한 것이었다. 비좁은 이코노미 석에 무릎을 붙이고 앉아있던 강준호가 매니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야밤에 웬 문자가 뜨지? 카톡인가?”
“야밤도 아니지요, 시차를 따져보면 서울은 지금 아침일걸요?”
“야밤이든 아침이든… 제 정신으로 자네에게 연락할 사람이 누가 있어? 빚쟁이들 밖에 더 있겠어?”
“허허! 무시하지 말라니까요? 이제 나도 타이거 우즈의 후계자이면서 싱글메이드 사의 광고모델인 톱스타의 정식 매니저라 이겁니다.”
“허허, 잔소리 말고 전화기나 켜봐.”
답답한 이코노미 석에서 불면과 무료함에 시달리고 있던 강준호, 백광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화기가 울렸으니 오죽 궁금했을까.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들은 막상 전화기 화면 위로 펼쳐지는 동영상을 보자마자 뒷목부터 뻣뻣해져 오는 느낌이었다. 현기증이 생겨나기도 하고 콧날이 시큰대는 것도 같더니, 동영상이 끝나고 화면이 정지된 이후에는 아예 눈동자도 꼼짝 못할 정도로 온몸이 굳어버리고야 말았다.
“혀… 형님, 이거 라이브 상황일까요?”
“라이브? 다… 다시 한 번 돌려봐라.”
“재생되는 걸 보니 라이브는 아니군요. 그런데 얘가 강유리… 그리고 홀딱 벗은 놈이 유호성… 맞지요? 그리고 여기가… 비행기 화장실임에 분명하지요? 미치겠네. 어째서 둘이 이런 꼴로 함께 사진에 찍혔을까?”
둘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쇼크를 너무 심하게 받았기 때문이었는데, 마침 그때 허옇게 질린 표정으로 강유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삼자대면에 나선 불륜상대자들처럼 서로가 서로를 한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아빠…! 어떡해요?”
“쉿! 아무 곳에서나 아빠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하지만 이런 어색한 상황이 결코 오랫동안 이어지지는 않았다. 왜냐고? 강준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중대사건이 벌어지더라도 능히 빠른 시간 내에 무마할 수 있어야 노장이라 할 수 있겠지. 그는 노장답게 강유리를 다독거리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화면에 뜬 게 모두 사실이냐?”
“…네, 아빠. 죄송하고요, 어떡하지요?”
“혹시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고 있니?”
“파파라치예요. 돈을 원하고 있어요.”
“네가 갑자기 유명해지더니 유명세를 치르려나보다. 그 놈 어디 있니? 내가 먼저 만나봐야겠다.”
“안돼요. 그 사람은 나하고만 얘기하겠대요. 아빠의 정체는 전혀 모르고요… 매니저와 사진가격을 정한 뒤에… 둘이서만 다시 만나재요. 혹시 딴 짓이라도 하는 날엔 즉시 방송국으로 이 사진을 전송할거예요… 난 몰라!”
강유리는 이렇게 울먹였다. 물론 매니저 백광돌도 주먹을 불끈 쥐며 분노를 표했다. 하지만 백전노장 강준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말아라, 내게도 생각이 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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