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왕짜증…고열ㆍ먼지 뿜어내는 에어컨실외기 큰문제
-무분별한 설치로 한꺼번에 많은 먼지ㆍ열 발생…화재 주범으로
-‘2m 이상 설치’ 외엔 세세한 법적 기준 없어…이마저 강제 못해
[헤럴드경제=구민정 기자] #. “여기 근처 건물들에 붙은 실외기만 최소 수백 대가 되잖아. 그러니 나무들이 여름만 되면 시커멓게 말라죽어가.”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있는 강남대로. 이곳 버스정류장 옆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이모(56) 씨는 여름철만 되면 가로수들이 걱정이다. 건물들 사이 좁은 틈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들이 내뿜는 열 때문에 가로수들이 시들어가기 때문이다. 실외기들이 뿜어내는 열들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버스를 기다리던 직장인 김유미(28ㆍ여) 씨도 “안그래도 더운데 걷다가 얼굴로 더운 실외기 바람이 불면 정말 짜증이 난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무분별한 실외기 설치로 무더운 여름이 더 힘들어지고 있다. 고층 건물이 들어서 있는 상가 지구엔 건물들 사이에 각 사무실에서 설치한 에어컨 실외기들이 질서없이 놓여있다. 에어컨을 주로 사용하는 여름철에는 수백 대의 실외기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많은 열과 먼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실외기들 대부분 지상 가까이에 설치돼 있어 많은 실외기가 한번에 돌아가면서 생기는 열과 먼지는 고스란히 보도로 쏟아진다.
이로 인해 보도의 지열은 올라가고 가로수가 죽는 등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실외기 피해는 주택 지구도 마찬가지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서 자취를 하는 박지형(24) 씨는 “창문을 열면 바로 옆 건물 벽면인데 여름철에는 에어컨 실외기 소음이 건물 사이 좁은 공간을 통해 창문으로 바로 들어오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 둘 수도 없다”며 “밤에는 ‘우웅~’하는 소음 때문에 매일 잠을 설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에어컨 실외기 설치 관련 지침은 조례 수준으로 각 구마다 다르고 구체적인 법적 기준이 없어 설치가 중구난방인 실정이다. 건축물의설비기준등에관한규칙에 따르면 “건축물에 설치하는 냉방시설 및 환기시설의 배기구는 도로 면으로부터 2m 이상의 높이에 설치하거나 배기장치의 열기가 보행자에게 직접 닿지 아니하도록 설치하여야 한다”고만 돼있다. 하지만 에어컨 실외기의 경우 설치 시 관할 기관에 신고를 하거나 허가를 받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행자ㆍ가로수를 피해 설치되는 경우를 보장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상업지구든 주택지역이든 상관없이 모든 건물에서 국토교통부 법령으로 2m 이상 높이에만 실외기를 설치하면 된다”면서도 “사실상 모든 건물의 실외기를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이처럼 실외기가 명확한 법적 규제 없이 무분별하게 설치되면서 에어컨 실외기는 화재 가능성을 높이고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주범으로도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안전하고 미관상 보기 좋은 실외기의 설치를 위해선 좀 더 현실적인 관련 법률과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석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에어컨 실외기로 인해 보행자에게 열 바람이 직접적으로 부는 등 실질적인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해외의 경우 에어컨 실외기를 모두 옥상으로 올려 설치하게 하는 등 관련 법이 명확하게 정비돼 있어 관리가 잘되고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도 실정에 맞게 관련 법규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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