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5회> 모든 길은 하나로! (1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강준호가 그린 위에 누우라고 하니… 그녀는 말없이 누웠다. 빈대떡만이나 하다고 알려져 있던 게리플레이어 골프장의 그린은, 분위기 때문인지 서울 시내 모텔에 있는 둥근 물침대처럼 여겨졌다. 모양과 크기가 어쩜 그리 같은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다가와 꽃이 되었다고? 물론 유명한 시 구절이다. 모름지기 사랑하는 순간엔 누구나 시인이 되는 법. 강준호가 물침대 그린에 누우라고 했을 때부터 그녀는 강준호에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 활짝 핀 밤의 장미.

“정말이네… 하늘 위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 같네.”

“그렇지? 내 말이 맞지?”

“별이 천지에 깔려있으니… 여기야말로 별천지네.”

별유천지비인간이라, 아름다움이 인간세계를 넘어 선 곳도 별천지겠지만, 그녀의 말대로 별이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곳도 별천지였다. 그녀는 별을 보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눈을 부릅뜨긴 강준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기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그녀에게 충실히 봉사하기위해 눈 부릅뜨고 심호흡부터 하는 중이었다.

“이런 기분은 처음예요.”

“그렇겠지, 처음이겠지.”

신희영이 황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겠지… 언제 옷 홀랑 벗고 야외에서 사랑해본 적이 있기나 한가? 백문이 불여일견! 머릿속으로 백번 상상한 것보다 옷 벗고 그린 위에 누워있는 기분은 그야말로 죽여줬다. 더구나 월야침침 야삼경… 그믐날인지 달은 없었고 따스한 바람만이 헐벗은 아랫도리를 감싸고 있었다.

“밤바람은 아랫도리에 시원하고… 강 프로님 입김은 목덜미에 뜨겁고… 별은 쏟아지고… 정말 미치겠다.”

“그래요? 내 뒷목덜미도 엄청 뜨거운 걸?”

나이트 까운을 돗자리삼아 그린 위에 펼쳐 눕고, 이제 막 그녀 위에 엎드려 레슬링 자세를 취했을 때였다. 웬걸, 그의 목덜미에 뜨거운 입김이 쏟아지더니 헐떡이는 숨소리가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다. 동시에 울려나온 것은 그녀의 비명소리!

“엄마야! @#$%^&*!!”

그녀가 뭐라고 비명을 지르는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왜냐고? 강준호가 그녀보다 훨씬 더 놀라 그만 정신 줄마저 아득히 놓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목덜미에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놈은 멧돼지 혹은 늑대에 분명했다. 푸른빛이 새나오던 눈동자, 한 뼘이 넘는 뻣뻣한 수염, 항아리처럼 여겨지던 검은 아가리…

“덤벼라, 이놈! 멧돼지냐? 황소냐? 아니면 사자?”

그는 바닥에 깔았던 그녀의 나이트 까운을 펼쳐들었다. 갑자기 까운을 잡아 빼는 통에 그녀의 몸이 데굴데굴 굴러 그린 밖으로 밀려났다. 그는 얼떨결에 스페인의 투우사를 연상한 것이다. 붉은 망토를 양 손으로 펼쳐들고 펄럭일 때마다 황소는 흥분하여 망토를 향해 달려들곤 하지 않았나.

“자! 덤비라고!”

살기 위한 본능이었을까? 비록 그믐달이긴 했지만 투우사의 망토처럼 펼쳐 든 나이트 까운은 달빛을 받아 흰 빨래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예상대로 멧돼지인지 황소인지, 아니면 사자인지 어두워서 구분할 수 없는 짐승이 펄럭이는 빨래를 향해 내달렸다. 그러기를 수차례, 어둠 속에서 유난히 펄럭이는 흰 빨래를 발견한 사람은 그제야 몰래 숙소로 돌아오던 유호성과 강유리였다.

“오빠, 저기에 웬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왜들 저러는 걸까요?”

무섭다는 듯, 강유리가 유호성의 허리를 바짝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