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3회> 사랑을 위한 의식 (1)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무덥던 여름이 가고 언뜻 가을이 온 것이라 여길 즈음, 이른 단풍이 들 무렵부터 세상은 거성그룹의 행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이 5개국 관통 랠리대회를 위해 신의주부터 판문점까지 길을 내준다는 발표가 있고 난 뒤의 변화였다.

이제부터 지구는 거성그룹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느낌이었다. 우선 인터넷 뉴스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명분으로는 자동차를 활용한 스포츠일 뿐이지만 실제로는 북한이 개방의 수순을 적극적으로 밟기 시작했다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북한이 랠리 선수들의 통과를 허용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마치 은밀한 사랑을 움틔우려는 순결한 몸짓인 양 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 기사 좀 보세요. 내 이럴 줄 알았다고요. 역시 북한을 이용하면 엄청난 광고효과를 보게 마련이에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 아프리카, 심지어는 남미에 이르기 까지 온통 우리 거성그룹의 뉴스로 달구어져 있지 뭡니까? 허허허!”

“그걸 모두 광고비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어마어마하겠지요?”

“그럼요, 역시 회장님의 안목은 먹이를 노리는 매와 같고, 추진력은 들판을 달리는 사자와도 같으십니다.”

거성그룹의 임원들은 저마다 추임새를 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추임새란… 이미 벌어진 일은 높이 띄우고, 아직 계획 중인 일에는 신중한 척하는 필살기였다. 더구나 이번 사안은 회장이 직접 관심을 보이고 그의 아들인 재벌2세가 팔을 걷고 나선 일이었으므로 입에 거품을 물고 감격스러워 해야만… 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거성그룹의 회장과 그의 피를 이어받은 재벌2세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세상만사가 거성그룹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이른바 공전을 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결코 멀미에 시달리지 않더라는 말이었다.

그 와중에 권도일은… 북한에 머무는 동안 도형철과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진장 애쓰고 있었다. 그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은 어쩌면 북한에서 하룻밤 품에 안았던 예원희에 대한 영원한 배려와도 같았다. 세상은 거성을 중심으로 공전하지만 그의 마음은 예원희를 중심으로 애틋하게 빙글빙글… 이를테면 자전을 하는 중인지도 몰랐다.

“유호성을 섭외하는 일은 어떻게 되어갑니까?”

“그 친구… 제 아버지를 닮아서 무지하게 꼴통이더라고요.”

“그렇겠지요. 하지만 여자 골퍼에게 반해서 랠리마저 포기하는 걸 보면 순수한 면도 있어요. 어벙한 건가? 어쩌면… 파파라치에게 질질 끌려 다니면서 돈이나 뜯기는 걸 보면 한심하기도 하고요.”

“워낙 꼴통이라 우리 의도가 전혀 먹혀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그 작자를 반하게 만든 여자골퍼 강유리도 북한으로 끌어들이는 양동작전을 펼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넝쿨을 당겨야 호박이 딸려오지 않겠습니까?”

“양동작전? 넝쿨과 호박? 하하하… 무슨 말씀이신지 대충 알겠습니다. 내친 김에 북한에서 골프대회도 함께 열자는 뜻이로군요?”

“그렇게 해주시면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습니다만.”

권도일은 재벌2세에게 이렇게 청했다. 하지만 거성의 전략담당 상무 도종호와 북한의 도형철 간의 관계는 아직 밝히지 않은 상태였다. 언뜻 생각하면 공교롭지만 유심히 따져보면 의혹이 생겨나기도 하는… 도형철과 도종호의 관계는 오랫동안 묵혀두고 써먹어야 할 비장의 무기였으므로.

“얼마가 들 지는 모르지만… 유호성을 5개국 관통 랠리대회에 끌어들일 수 있는 일이라면 즉시 추진하도록 하세요.”

재벌2세는 쉽사리 허락했지만 권도일은 어려운 일을 성사시킨 느낌이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