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6회> 사랑을 위한 의식 (24)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한편, 유호성이 북한 꽃미녀 예원희의 덫에 걸려들던 바로 그 순간에 평양골프장 1홀 앞 공터에서는 축포 한 발이 요란한 폭음을 뒤로한 채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전 세계 여자 프로꼴푸 2012 겨울대회’의 개막을 알리는 축포였다.
“염병, 꼴푸가 뭐야… 무식하게시리”
당 서열 33위에 목을 매 온 간부 도형철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하긴 연단 뒤에서 펄럭이는 플래카드에 ‘골프대회’라고 쓰지 못하는 것도 모두가 끗발이 약하기 때문이었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당 간부들 중에서도 진골, 성골이 있고 공작, 백작, 후작, 남작에 버금가는 서열이 있었으니 끗발 낮은 그의 마음은 서럽기 한이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오랜만에 호사를 하는 중이었다. 어째서냐고?
바로 강유리 선수 때문이었다. 무릎 위 40cm에 달하는 빨간 핫팬츠에 메탈소재 반팔 티셔츠를 걸친 강유리 선수의 몸매는 분명 인간의 몸매가 아니었다. 더구나 북한 여자들에게서는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8등신에 롱다리…
‘아, 미치겠구나!’
그뿐이랴? 메탈소재 티셔츠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를만한 글래머…
‘아! 미치고 환장하겠구나!’
그는 강유리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연신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무릇 그런 현상은 도형철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었다. 이제 막 일장연설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오른 당 서열 9위 간부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내레… 눈이 뒤집히겠구먼!’
비록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았다 뿐이지 당 서열 9위 간부는 연설을 하기 위해 꺼내어 놓은 연설문이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는 말이다.
“에… 오날 날… 세계적인 꼴푸대회를… 아니 세계적인 꼴푸선수를 이 자리에 모시니 미치겠습네다, 아니… 이거 왜 이러나…”
이를테면 혀가 꼬였다고나 할까?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써도 혀가 자꾸 목 뒤쪽으로 말려들어가는 것만 같아서 그는 일단 냉수부터 한 잔 벌컥벌컥 들이켜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집 나간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올까?
연단 앞쪽에 무리지어 줄 서있던 다른 간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당 서열 9위 간부의 연설은 듣는 둥 마는 둥, 모든 신경은 강유리 선수에게로 집중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연설문을 엉터리로 읽은들 아무도 그걸 알아차리는 작자가 없었다.
“강유리 선수 만세! 만만세!”
남한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한 가닥 하는 미녀들이 몰려왔다는 소문에 구름처럼 들이닥친 군중들도 요동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만세를 부르는 것으로 심정을 대변했는데, 그런 상황을 현대 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집단 히스테리라고나 해야 마땅할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강유리 선수는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그녀 옆에 줄지어 서있던 외국 선수들도 덩달아 ‘쌩큐, 쌩큐 베리머치’를 연발하며 손을 흔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강유리 선수의 마음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의당히 이 순간에 곁을 지켜주어야만 할 유호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허둥지둥 어디론가 떠나간 지 벌써 30분. 그녀는 저 멀리 잿빛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잿빛 연기… 그것이 스피드 쇼크에서 랠리 카들이 드리프트를 할 때 타이어 마찰로 인해 피어오르는 연기임을 그녀가 모를 리 없기 때문이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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