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판사의 조언

빚은 전염성이 강하다.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을 분산하려다 결국 전 세계로 위기를 퍼뜨려버린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비근한 예다. 경제적으로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된 현대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개인의 노력 여부와는 무관하게 누구나 빚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다는 불안함.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이진웅(38) 판사는 “파산은 그러한 불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최후의 복지제도로 기능한다”고 말한다.

법원 파산부는 속된 말로 ‘깡통 찬’ 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법원 가득 쌓인 서류장을 넘길 때마다 평범한 사람의 절절한 사연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아버지에게 명의를 빌려줬다가 졸지에 빚을 떠안게 된 20대 청년의 이야기, 부부가 함께 화장품 가게를 냈다 빚을 갚지 못해 남편은 자살하고 남은 두 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30대 여성….

이 판사가 소개하는 사연은 하나같이 눈물겹다.

살아보려고 버틴 죄의 대가는 가혹하다.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이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주위 사람과 절연하고 사회적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의사가 말기암 환자를 보며 그렇듯, 이 판사 역시 너무 늦게 법원을 찾은 이들을 보면 ‘조금만 더 일찍 법원을 찾았으면 좋았을 것을…’하는 생각을 갖는다고 한다.

이 판사는 “어떤 이유로 빚을 지게 됐건 먹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최악의 상황은 피하도록 해줘야 한다”며 “마이너스 상태에 있는 사람의 재산을 제로(0)로 만들어주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한 일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혹자는 ‘돈을 빌려 썼으면 갚아야 하는 게 당연한 순리 아니냐’고 책임론을 언급할지 모른다. 이 판사 역시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며 그러한 내적 갈등에 고민해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최근 금융복지상담센터를 방문했던 경험으로 ‘무책임한 채무자’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나마 떨쳐버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많은 채무자가 끝까지 빌린 돈을 갚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오히려 고리의 채무가 쌓여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지게 되는 거지요.”

모든 채무자가 손쉽게 채무를 탕감받으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는 기꺼이 법원의 몫으로 껴안았다.

“분명 비상상황에서 재산을 감추려고 하는 사람은 있을 것입니다. 파산을 신청하는 이들이 기본적으로 정직해야 하겠지만, 더 면밀히 조사하고 남은 재산을 공정하게 분배해야 하는 임무는 법원에 주어진 것이겠지요.”

<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