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0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이리 오르시어요, 대감.”
권도일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기가 기생 촌인지, 대궐인지, 아니면 극락세상인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회장님, 회장…님”
재벌2세의 눈치를 보고 있던 권도일은 급기야 평교자에서 내려서려 했지만 가마꾼 차림의 웨이터들이 그를 내려서게 놔두지 않았다.
“회장님이라니요? 여기엔 두 대감님밖엔 없사옵니다.”
좀 전부터 한복 차림으로 분 냄새를 풍기던 마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어디서 가야금을 타는가… 딩딩, 다당! 한가로운 가락이 울려 나오고 있었다.
“암, 그렇지. 여기엔 두 명의 대감밖엔 없지. 그 외엔 모두 다 아랫것들일 뿐이야. 자, 이제 안으로 듭시다, 권 대감.”
“네? 그러지요… 회장님.”
“어머, 대감이라고 부르셔야지요.”
눈치가 젬병이란 뜻인가? 마담은 눈을 흘기다 못해 살짝 권도일의 팔꿈치를 꼬집기 까지 했다. 이를테면 지금부터 대감놀이라도 해보라는 투였다.
“아하하하! 오늘 술값은 외상일세.”
“아무러면 어떠하옵니까? 약주나 흔쾌히 드시고, 가무에 능하신 분은 춤을 추시면 되옵고… 음률이 뛰어나신 분은 가야금이라도 타시고, 묵화에 뛰어나시다면 난초를 한 폭 쳐주시면 그만이옵니다.”
기막힌 노릇이었다. 곧 개최될 5개국 관통 랠리대회에 대비하여 당장 체력훈련부터 돌입할 생각에 골몰하던 권도일은 느닷없이 가담하게 된 대감놀이에 벌써부터 넋이 빠져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그러나, 언뜻언뜻 스치는 마담의 옷자락에서는 묘한 향기가 풍겨 나오고 있었으니…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쓸수록 더욱 아득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자, 자… 술상은 천천히 보아도 좋다. 내 오늘 마음을 터야만 할 대감을 모시고 왔으니 술에 취하기 전에 흥선 대원군 놀이부터 하면 어떨까?”
“어머나… 성질도 급하셔라. 정 그러시다면…”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재벌2세는 마담의 치맛자락을 끌어당기며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응수하는 마담의 태를 보니 전에도 이런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던 모양이었다.
“흥선 대원군 놀이가 뭡니까? 회장님.”
“또 회장님이라고 하는군요. 대감! 대감이라고 부르라니까.”
재벌2세는 이렇게 일축하고는 더 이상 관심 없으니 알아서 재미있게 놀아보라고 했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는 모든 벽을 허물어 보자는 의도였다. 남자 대 남자로 놀아야 서로 가슴을 허물 수 있다는 생각일까?
“이리 와서 다리를 벌려라!”
“어머나, 대감! 저처럼 천한 것의 가랑이 사이로 드시겠다고요? 아니 되옵니다. 당장 어여쁜 색시 두 명을 불러오겠사옵니다.”
이런, 이런… 재벌2세와 마담이 노는 모습을 보니 예사롭지 않을 것이란 생각부터 들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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