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1월, 고 3을 앞둔 여고생 박하선은 영화 ‘키다리 아저씨’의 주연 연정훈과 하지원의 무대인사를 보기 위해 서울 극장을 찾았다. 배우들이 입장하는 통로에 기다리고 있던 박하선은 연예기획사 매니저로부터 “연예인 해볼 생각 없냐, 한번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명함을 받았다. 고3을 앞두고 아나운서를 지망할까, 비행기 승무원을 할까, 호텔경영을 전공할까 생각은 갈래를 뻗었지만 “연예인이 되는 것 말고는 하고 싶은 것도 목표도 없던 때”였다. 갑갑한 마음에 찾았던 극장에서 박하선의 인생이 바뀌었다. 박하선은 부모님을 설득해 그 해 8개월간 실기훈련을 받고 일반전형을 거쳐 이듬해 동국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다. “무대 인사를 다닐 때마다 기분이 묘해요. 몇 년 전엔 저 맞은편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인사를 하는 입장이 돼 있다니…. 신기하고 재미있고 기분 좋죠.”첫 주연작 ‘음치클리닉’(감독 김진영)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박하선(25)은 여느 또래 여배우와는 달랐다. 허스키한 중저음의 목소리에 ‘아줌마 수다’를 실었다. 기자 낯가리고 매니저 눈치보며 예쁜 척 착한 척, 행여 실언이라도 할까 살얼음판 걷듯 하는 배우가 아니었다. “친구들이 그래요, ‘너는 입만 안 열면 된다. 예쁜 게 입만 열면 확 깬다’고요.”“해놓고 후회한 적은 있어도 안 해서 아쉬워한 적은 없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라는 게 박하선의 말이다. 1남1녀 중 장녀로 어릴 때부터 ‘소녀’보다는 선머슴이 더 가까웠다. 중3 때까지 서울의 한 한옥에서 눈 오면 눈 쓸고, 연탄 밟아 깨놓고, 개랑 뒹굴며 살았다. “연애할 때도 ‘밀당’(밀고 당기기)이나 ‘어장관리’(뭇이성에게 호감을 사려는 행동)에는 관심없다”고 말했다. 웃고 울다, 장난치다 샐쭉해지다, 찧고 까불다 어느새 그랬냐는 듯 조신한 표정으로 돌아오기를 거듭하는 ‘오만가지 표정’이 영화 속에는 그대로 담겼다. ‘음치클리닉’은 세상에 오직 단 한사람, 인생의 처음이자 유일한 사랑 앞에서 멋들어진 노래를 부르기 위해 ‘가창 클리닉’에 등록해 ‘속성 교정’을 받는 한 20대 음치 여성의 고군분투기, 좌충우돌 사랑만들기를 그렸다. 또래 여배우 중에는 ‘적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변화무쌍한 표정과 자유자재의 대사소화력을 보여준다. 박하선은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과 사극 ‘동이’ 등을 거쳐 독립영화 ‘영도다리’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등에서 신선한 이미지와 보기 드물게 과감하고 진지한 연기로 주목받았다. “악역, 살인마부터 멜로영화의 아름답고 가련한 여주인공까지 모두 경험해보고 싶다”는 박하선은 “이름 조금 얻었다고 안주하고픈 마음이 생긴 때도 있었지만 깨달았다. 더 많은 실수와 실패가 모두 용납되는 나는 이제 스물다섯”이라고 말했다. 이형석 기자/사진=박해묵 기자/m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