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3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12
사실 예원희는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보자는 기분으로 유호성에게 전화를 건 셈이었다. 그녀가 중국 땅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여행 허가를 받은 것은 서열 33위 당 간부인 도형철의 수행인 자격일 뿐이었다.
이른바 <‘전 세계 여자 프로꼴푸 겨울대회’를 성공리에 마치고 당의 위상을 세계에 일떠세웠다>는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었고, 그 포상으로 두만강 근처 중국 땅을 여행하게 되었던 것인데… 에라, 중국 땅에 발을 내디딘 김에 북한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국제전화나 해보자는 심사였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녀는 권도일과 하룻밤 맺었던 꿈에서 헤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그녀는 막상 유호성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권도일을 떠올리고 있었다는 말인데….
그럼 이쯤에서 건망증 심한 독자들을 위해 잠시 과거를 되짚어보기로 하자.
원래 예원희는 북한의 골프 선수 출신으로서 당 간부 서열 33위에 오른 도형철의 측근이었다. 그런데 북한 당국에서는 골프 경기를 활성화시키기는커녕, 난데없이 자동차 속도경기에 주력하는 것이 아닌가.
내심 고민에 쌓여 있던 도형철은 우연한 기회에 북한을 방문한 권도일을 만나게 되었고, 권도일의 배후에 남한 재벌의 보살핌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미인계로 공략하게 된다. 그때 미인계의 행동대원으로 나선 절세가인이 바로 예원희였던 것이다.
“원희야, 나의 당 서열이 높아지려면 꼴푸를 활성화시켜야만 한다. 제6사단장 녀석 좀 봐라. 그 녀석이 맡고 있는 자동차 속도경기 부문이 당의 인정을 받으면서부터 서열이 쭉쭉 올라가서… 나보다도 세 계단이나 높아지지 않았니?”
“그래요. 저도 속상해요.”
“그러니 네가 나 좀 도와주렴. 마침 남한에서 권도일이라는 재벌 측근이 와 있는데… 그 사람 도움을 받으면 우리도 꼴푸대회를 개최할 수 있어. 그렇게만 된다면….”
“서열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단 말씀이지요?”
스토리를 정리해보면 대충 이렇게 흘러왔다는 것이다. 결국 도형철은 전 세계 여자 프로골프 겨울대회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그 와중에 그녀는 권도일을 사랑하게 되고야 만다는 얘기.
이야기가 이 정도에서 그치면 재미는 빵점. 그녀는 권도일을 사랑하게 되고, 속내를 모르는 권도일은 그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의 고민이란? 전 세계 여자 프로골프 겨울대회에 강유리 선수의 캐디 자격으로 입북한 유호성… 대대로 원수지간인 유호성을 랠리 경기에 참가시키는 것. 그리하여 경기 도중에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는 것.
예원희는 마음속의 연인 권도일을 위해 스스로 유호성을 찾아가 유혹한다. 이를테면 사랑의 소용돌이 속에 제 발로 걸어들어간 것인데… 그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그녀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예원희는 속으로 이렇게 읊으며 눈물짓곤 했었다. 마음으로는 권도일을 사랑하면서도 육체는 유호성에게 맡겼다는 것인데… 그 덕택에 유호성이 골프에 등을 돌리고 랠리 선수로 돌아서긴 했지만 흐르는 눈물은 하염없었다.
“이번에 개최되는 5개국 관통 랠리대회에 왕자님이 참석하신다니… 저는 더이상 소원이 없어요. 왕자님이 자동차를 몰고 평양 거리를 달릴 때 먼발치에서나마 바라볼게요. 그리고 힘차게 응원할게요.”
“그려, 그려! 고마워요. 원희 씨!”
재벌 2세와 권도일이 요정 안으로 들어가 흥선대원군 놀이를 하고 있는 동안 유호성은 전화통을 잡은 채 이렇게 수다를 떨고 있었던 것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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