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수백만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의 심복 중 심복으로 선전장관을 맡아 독일, 유럽, 나아가 전 세계에 대재앙을 안겨주었던 요제프 괴벨스. 그에게는 마그다라는 아름다운 금발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대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난 로맨틱한 기질의 여인이었죠. 그런데 그녀는 왜 권력욕에 사로잡힌 프티부르주아(소시민) 출신의 니힐리스트(허무주의자) 정치가에게 빠져 그의 총알에 자신의 목숨을 내주었던 걸까요. 언뜻 보기에도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이 둘의 만남은 시작부터 불길한 기운이 감돕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유복한 집안의 딸로 테어난 마그다, 나치 선전장관인 괴벨스와 재혼했다.

로맨틱한 여인, 나치스와의 운명적인 만남

유복한 엔지니어 집안의 딸로 여섯 살 때부터 수도원에서 종교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마그다. 그녀는 스무 살 때 마흔에 가까운 나이의 실업가 귄터크반트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사업에만 열심이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그와 몇 년 만에 헤어지고 맙니다. 당시 마그다가 젊은 남자 에른스트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는데 이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된 것이 이혼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다만 그녀에게 에른스트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춤을 추는 상대였지 그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이제 결혼하지 않겠어.’ 마음먹은 그녀가 살던 1920년대 독일 베를린은 국제적인 환락의 도시였습니다. 특히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화려한 우파(UFA) 영화가 풍미하던 시기였습니다. 방이 일곱 개나 있는 마그다의 집은 젊은 부르주아의 아들과 예술 청년들의 집합소였고 그녀는 그림을 모으고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삶을 보냈습니다.

그런 그녀가 베를린 체육관에서 열린 나치당 집회에 가게 된 건 아마도 우연한 호기심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집회장을 가득 채운 군중과 펄럭이는 붉은 나치스 깃발에 매료됩니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결혼도 하지 않겠다는 히틀러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빈약한 몸을 가졌지만 듣는 이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선전부장 괴벨스의 연설에 반해버린 그녀는 집회 다음날, 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당(나치당)에 가입합니다.

마그다의 젊은 연인이었던 에른스트는 정치에 흠뻑 빠진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권총까지 들고 마그다의 집에 찾아가 있는 대로 방 안의 물건을 부수며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죠. 하지만 마그다는 경찰을 부른 뒤 냉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저 미치광이를 유치장에 가둬주세요.” 이날로 이 둘의 관계는 완전히 끝이 납니다.

괴벨스의 외도

이후 그녀는 히틀러를 지지하는 수많은 여인들과 함께 집회를 다니며 나치당을 지원하고 또 이혼으로 받은 위자료마저 나치당에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괴벨스는 마그다를 베를린 지구 기록 보관소의 정리계로 임명하고요. 괴벨스에게 직속된 개인비서와 같은 역할이었는데요. 그 덕분에 마그다는 히틀러와도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1930년 12월. 하지만 마그다는 자신이 동경하는 히틀러가 아닌 어둡고 허무적이지만 화려한 언변을 가진 괴벨스와 결혼합니다. 이마저도 이상적인 아리안족 가정을 만들어 달라는 히틀러의 부탁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는데요. 결과적으로 마그다는 히틀러의 진심 어린 축복 속에 괴벨스와 결혼을 했고 바로 그 해 선거에서 나치당 의석은 12석에서 107석으로 대폭 늘어납니다. 히틀러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죠.

당시 히틀러를 비롯한 당 간부는 거의 매일 밤 괴벨스의 집을 찾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 히틀러를 마그다는 항상 손수 만든 요리로 대접합니다. 특히 1932년 암살 미수 사건 있던 뒤로 히틀러는 베를린 체재할 때 항상 마그다 집에 머물렀습니다. 히틀러는 마그다를 사실상 퍼스트레이디로 여기고 대동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그다와 괴벨스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명의 아이들의 이름은 히틀러의 H를 딴 헬가, 힐데, 헬무트, 홀데, 헤다, 하이데였습니다.

마그다 괴벨스는 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와 괴벨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포함해 모두 일곱 명의 아이를 두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날부턴가 아름다운 여배우와 함께 극장 특별 관람을 가는 괴벨스의 모습이 종종 보이기 시작합니다. 상대는 리다 바로바라는 작은 체구의 갸냘픈 슬라브계 미인 여배우. 그녀도 구스타프 프뢰리히라는 배우와 결혼한 상태여서 이 둘의 스캔들은 더욱 충격적이었는데요. 마그다가 남편의 외도를 알았을 때는 이미 이 둘이 만남을 지속한지 2년이나 지난 뒤였습니다.

괴벨스는 리다와 헤어질 수 없다며 오히려 마그다를 다그쳤고 마그다는 별장에서 리다와 사랑을 나누는 남편을 보고도 침묵해야만 했습니다. 남편의 공공연한 외도를 끝내 참을 수 없었던 마그다는 괴벨스의 충실한 부하였던 한케를 통해 남편이 벌인 불륜 증거를 수집했지만, 계몽선전 장관의 추문을 국민 앞에 폭로할 수 없다는 히틀러의 반대로 그녀는 이혼 청구를 취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치스와 최후를 같이 한 마그다

1939년. 전쟁이 시작되면서 마그다와 괴벨스의 갈등도 자연히 물 밑으로 가라앉았습니다. 마그다가 거의 포기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이 남자와 헤어져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었겠죠. 때는 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하고 이어 1944년 연합군이 마침내 독일 국내로 침입합니다. 괴벨스는 히틀러에게 마지막까지 싸우다 적들의 포위 속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한다고 권유하며 마지막까지 히틀러 신화를 만들어 전쟁 중에 있는 독일 국민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돋우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1945년 봄. 소비에트 군대는 베를린을 세 방향으로부터 포위합니다. 그 해 4월 20일 마그다는 여섯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총리관저 지하에 있는 방공호로 피신하고요. 히틀러와 괴벨스는 마그다에게 남부 독일로 도망치라고 했지만 마그다는 그 제안을 거절합니다. 이미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죽을 각오를 한 상태였죠. 이날은 마침 히틀러의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왼쪽부터 마그다 괴벨스, 아돌프 히틀러, 요제프 괴벨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비에트군의 포환이 총리관저에 작렬하기 시작합니다. 히틀러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8일 새벽, 히틀러는 지하 방공호에서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거행합니다. 그리고 30일. 히틀러는 괴벨스와 마그다에게 이별의 인사를 한 뒤 이날 오후 권총으로 자신의 목을 쏴 자살합니다. 그의 연인 에바도 독약을 먹고 자살합니다.

그 다음 날인 5월 1일. 괴벨스는 잠든 아이들에게 독약 주사를 놓아 죽인 뒤 마그다와 함께 비틀거리며 아이들 방을 나와 정원으로 향합니다. 이윽고 ‘탕’하는 소리. 괴벨스의 총알에 맞은 마그다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괴벨스는 저 스스로를 향해 방아쇠를 당깁니다. 이어서 또 한 발, 탕. 그토록 무거운 운명의 사슬로 이어졌던 두 사람은 결국 이렇게 끝이 나 버립니다. 괴벨스와 마그다의 타다 남은 사체는 다음 날 러시아군에 의해 발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