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C=이정아 기자] 난리입니다. 구글에서 분사한 나이언틱랩스와 세계적인 게임업체 닌텐도가 개발해 내놓은 ‘포켓몬GO’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게임이 출시도 되지 않은 한국까지 예외가 아닙니다. 지역 락(lock)이 걸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강원도 속초에서 게임이 구동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포켓몬 출현 지역을 찾아가는 당일치기 관광 상품까지 등장했습니다. 미국 계정까지 만들어 우회로 포켓몬GO를 설치한 한국인은 지난 15일 1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게임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를 걷어 내면 포켓몬GO가 국내 게임 산업에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한국에서는 왜 포켓몬GO와 같은 게임이 나올 수 없는가. 그런데 이런 재미난 게임 앞에서 우리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 게임 업계가 PC·온라인 등 기존 플랫폼에 안주하고 있었던 게 문제라거나, 2020년 AR 시장이 VR 시장보다 4배 이상 커질 것으로 분석되니 정부는 AR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식인 것이죠.
게임은 이렇게 재밌는데 게임기사는 왜 진지,엄숙,근엄주의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포켓몬이 속초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13일 당일 SK텔레콤이 한국형 AR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여러 콘텐츠 업체와 논의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이어 18일에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용 콘텐츠를 담은 ‘뽀로로GO’가 출시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뭣이 중한지를 모르면 이렇게 부질없는 이야기만 한다는 조롱을 받게 됩니다.
'명텐도' 어원의 유래
한국에서 포켓몬GO가 나올 수 없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우리에겐 아직 포켓몬스터처럼 수백 가지 캐릭터를 보유하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컨텐츠가 없습니다. 지적재산권(IP) 부재입니다. 지난 5년 전 포켓몬과 비슷한 포멧을 가지고 있는 KT 올레 ‘캐치캐치’라는 게임이 있었지만 광고주, 시청자 모두에게 외면받자 게임은 1년 만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습니다. 왜 사람들은 캐치캐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걸까요? 답은 현장에서 만난 포켓몬 헌터들에게 있었습니다.
기자가 이틀간 속초에서 만난 20여 명의 포켓몬 헌터들의 나이는 28세에서 32세 사이. 이들은 모두 포켓몬 띠브띠브 씰을 모으기 위해 옆 동네를 기웃거리던 이른바 포켓몬 덕후(일본어 ‘오타쿠(お宅)’ 단어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조어)였습니다. 이들에게 어렸을 적 열광했던 만화나 영화가 무엇이었는지 물었는데요. 디즈니, 세일러문, 슈퍼마리오, 짱구, 스타워즈, 우리는 챔피언, 아즈망가대왕 등이 꼽혔습니다. 아쉽지만 국내 콘텐츠는 단 하나도 없었죠.
"나는 지우에요." 유년시절 추억에 흠뻑 젖으신 포켓몬 헌터1.
물론 우리에겐 한류 콘텐츠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분간 ‘한국형 포켓몬GO’로 나오는 게임들이 원조를 넘어설 정도로 혁신적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유년시절에 대한 향수를 처음 느끼기 시작하는 세대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데, 바로 이 세대를 매료시킬 콘텐츠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포켓몬GO 현상에서 ‘한국형 OOO’를 찾을 게 아니라 왜 한국은 포켓몬스터 같은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는 걸까 자문해야 합니다.
기자는 국내 포켓몬스터 같은 콘텐츠가 없는 이유에 대해 ‘정답을 강요받는 한국 사회’에서 답을 찾습니다. ‘불량한 것’이라서 선생님에게 만화책을 뺏기거나, 이현세의 만화를 미성년보호법위반으로 법정에 세우는 사회. 문학을 읽고 느낀 저마다의 감상은 사치일 뿐 빠른 시간 안에 ‘가장’ 알맞는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는 게 중요한 사회. 청소년에게 심야시간대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셧다운(shutdown)제’를 실시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사회.
정다아아압을 강요받으면 이렇게 된다 좋은 예
물론 매 정권마다 새롭고 혁신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없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단기간 안에 ‘우와아’하고 눈앞에 보여질 수 있는 하드웨어 기술에 치중돼 예산이 배정되는 편이었죠.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수백억 원을 들여 2009년 산 슈퍼컴퓨터 타키온Ⅱ은 도입 당시 연산속도가 14위였습니다. 하지만 2013년 107위로 떨어지더니 올해 259위까지 내려앉았습니다. 정보통신융합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한 교수는 “정부가 비싼 돈을 들여서 컴퓨터를 사놓고 시스템 돌리는데만 치중했지 이 안에 있는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구동되는지 연구하는데 소홀했다”며 “비싼 돈 들여 슈퍼컴퓨터 사고 국내 슈퍼컴퓨터 순위가 떨어지면 다시 엄청난 예산을 배정해 그해 제일 잘 나가는 슈퍼컴퓨터를 사오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비싸게 돈주고 산 슈퍼컴으로 우리나라 자체 슈퍼컴을 만들 생각이 없다...
포켓몬GO는 2013년 만우절에 ‘포켓몬들을 구글 지도에 뿌려보면 어떨까’라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아이디어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몰락한 게임명가’ 닌텐도는 주가가 65%이상 치솟았고 시가총액도 15조원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부가가치산업인 게임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한국형 포켓몬GO를 만들라”고 자꾸 다그친다면, 어느 글에 달린 네티즌의 댓글처럼 이렇게 비아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형 포켓몬GO 말고 그냥 포켓몬GO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죠. 포켓몬스터 같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창의력을 존중하고 다양한 답을 인정하는 사회가 선행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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