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남민 기자]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조선 제 11대 왕 중종(中宗)이 즉위했지만 어수선한 세월은 지속됐다. 이 때 한 젊은 사림이 혜성 처럼 등장했다.

신진 사림파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ㆍ1482~1519)다. 조광조는 1515년 알성시 별시에 급제한 후 성균관 전적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며 조선을 성리학적 이상사회로 건설키 위한 원대한 꿈을 꾼다.

중종도 파격 발탁, 적극 지지했다. 왕을 등에 업은 사림파의 젊은 영수 조광조는 그러나 너무 과격했고 급진적이었다. 훈구파에 의한 사회적 비리를 도학정치(道學政治)로 조선을 개조하려 했지만 수단과 방법론에 문제를 드러냈다. 율곡 이이도 그 부분을 안타까워 했다. 뜻이 맞지 않은 훈구세력들을 소인으로 폄하하고 중종반정 공신 76명에 대해 위훈삭제에 들어간다.

소쇄원 광풍각 풍경
소쇄원 광풍각 풍경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훈구파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때 ‘주초위왕(走肖爲王)’ 카드가 등장하고 중종은 마침내 조광조를 의심, 등을 돌리게 된다.

‘주초위왕(走肖爲王)’은 훈구파가 대궐의 나뭇잎에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글을 꿀로 써서 벌레가 파먹게 한 다음, 마치 자연적으로 생긴 현상으로 꾸며 왕에게 고하도록 한 것이다. ‘주초(走肖)’는 ‘趙’자의 파획으로 ‘조(趙ㆍ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암시의 글이다.

1519년(중종 14), 꿈 많았던 조광조는 측근 70여명과 모반죄로 숙청 당하는 기묘사화(己卯士禍)를 맞는다. 조광조는 능주(綾州ㆍ전남 화순)로 귀양 갔고 한달만에 사사됐다.

이때, 조광조의 문하생이 되어 3년간 수학했던 한 청년 선비가 한양에서 고향 창평(昌平ㆍ전남 담양)으로 따라 내려왔다. 스승의 귀양지가 마침 고향 옆동네였다.

소쇄원 제월당 모습
소쇄원 제월당 모습

스승이 정치에 나서 입었던 일련의 화를 고스란히 보아온 청년 선비 양산보 (梁山甫ㆍ1503~1557)는 출세의 꿈을 접게 된다.

창평에서 태어난 양산보는 15세 때 상경해 조광조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며 성균관에 유학했다. 기묘사화가 일어나던 해 중종이 친히 주관한 시험에서 17세의 나이로 합격했지만 어려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자 이를 애석하게 여긴 중종이 선물로 위로할 정도로 미래 재목감이었다.

어린 선비 양산보는 스승이 사약을 받자 큰 충격을 받고 은둔생활을 결심한 것이다.

어느 날 창평의 한 작은 계곡, 물 위에서 노닐던 오리가 양산보와 마주치자 상류로 뒤뚱뒤뚱 달아난다. 이를 놓칠새랴, 양산보도 잰걸음으로 따라 올라간다. 오리가 더 못가고 멈춘 곳, 작은 폭포 앞이다. 조그만 협곡에 떨어지는 청명한 물소리, 솔바람 향기 그윽한 그 곳에 발길을 멈춘 청년 선비 양산보는 오리가 ‘낙점’해준 이곳에 자신의 꿈을 심는다. 정자를 짓고 정원을 가꿨다. 마침내 소쇄원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소쇄원의 작은 폭포 풍경
소쇄원의 작은 폭포 풍경

양산보는 이곳에서 성리학에 몰두하며 정원에 하나씩 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세속의 꿈을 접고 자연에 귀의해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고자 만든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양산보가 시작했고 아들, 손자 3대에 걸쳐 완성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별서정원으로는 이외에 다산 정약용이 지은 강진의 다산정원, 고산 윤선도의 보길도 부용동정원을 꼽을 수 있다.

그러니까 궁궐의 임금을 위한 대정원도 아니요, 관청에서 꾸민 정원도 아닌 한 선비라는 민간인이 산 속에 조성한 정원이다.

이 정원이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잉태한다. 양산보를 찾아와 계곡에 술잔을 띄우고 흘러가는 구름과 달을 보며 풍류를 즐기던 면앙 송순(宋純)ㆍ송강 정철(鄭澈) 등 조선 중기 많은 문신들이 꽃피운 가사문학(歌辭文學)의 산실이 된 것이다.

담양에서 밝혀진 가사만 해도 약 20편에 5000여수에 이른다고 한다.

송순은 양산보와는 내외종간이며, 하서 김인후(金麟厚)와는 사돈 사이였다. 담양부사를 지낸 석천 임억령(林億齡)도 교유했고 근처 창계천 건너편 정자 환벽당의 주인 사촌 김윤제(金允梯)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된 제봉 고경명(高敬命)도 소쇄원서 어울렸다.

입구에 오리 한 쌍이 길을 안내한다.
입구에 오리 한 쌍이 길을 안내한다.
소쇄원 입구에서 젊음을 만끽하는 여행객들.
소쇄원 입구에서 젊음을 만끽하는 여행객들.

소쇄원(瀟灑園). ‘맑을 소(瀟), 깨끗할 쇄(灑)’가 말해주듯 양산보의 마음을 대변하는 글귀다. 대학과 중용에 열중한 양산보는 이 ‘소쇄’라는 말을 좋아해 자호도 소쇄옹(瀟灑翁)이라 했다.

비구름 낮게 깔린 어느 봄날 주말 오전, 필자도 소쇄원 매표소 앞 개울에서 암수 한 쌍의 오리를 만났다. 양산보에게 소쇄원 터를 안내한 그 오리를 상징해 모든 내방객들에게 그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니 저 오리가 그냥 오리가 아니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담양의 대명사 대나무가 숲을 이룬 오솔길로 접어들고 곧이어 ‘올곧은 선비의 오래된 정원’ 소쇄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

작은 계곡과 어우러진 건너편의 정자, 동양화의 소재가 되기에 딱 좋을 풍경이다.

(담양 소쇄원②에서 계속)

글ㆍ사진=남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