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리우올림픽 남자탁구 개인단식 16강에서 중국 마롱을 상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정영식.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AP뉴시스]
9일 리우올림픽 남자탁구 개인단식 16강에서 중국 마롱을 상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정영식.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AP뉴시스]

한국 탁구대표팀의 올림픽 도전이 절반이 지났습니다. 9일 정영식이 세계 1위 마롱을 상대로 안까운 2-4 역전패를 당하는 등 남녀 각 2명의 개인전 출전자가 모두 8강 아래에서 탈락했죠. 단체전이 남은 관계로 이제 절반을 마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엘리트 탁구의 국제경쟁력은 중국의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더욱 심해지면서 많이 위축됐습니다. 원톱 중국 밑으로 한국 일본 독일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엇비슷한 2위국가들이 즐비한 형국입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운동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은메달을 목표로 하냐?’고 힐난할 수도 있지만 현재 세계 탁구에서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겐 은메달이 우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감독을 맡았던 2012년 런런 올림픽 남자탁구대표팀이 2위를 차지했을 때 '금메달 같은 은메달'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엘리트 탁구의 위축과는 정반대로 생활체육 탁구는 ‘폭발’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동호인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동호회 활동을 하며 정기적으로 탁구를 즐기는 인구가 100만 명이 넘었다는 얘기도 있고, 생활체육탁구는 대회는 전국적으로 거의 매주 열리고 있습니다. 이런 탁구동호인들이 국가대표 한국 탁구를 열렬히 응원하니, 경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올림픽 첫 금메달리스트(탁구는 88년 서울올림픽 때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고, 제가 남자단식 우승을 차지했답니다^^) 자격으로 감히 리우 올림픽의 한국탁구를 중간점검 하려고 합니다. 정영식의 눈물은 보약

4라운드(16강)에서 싱가포르 유멩유를 상대로 전력을 다하고 있는 전지희.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AP뉴시스]
4라운드(16강)에서 싱가포르 유멩유를 상대로 전력을 다하고 있는 전지희.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AP뉴시스]

남자단식 16강 정영식-마롱 경기는 승패를 떠나 정말 명승부였습니다. 정영식 선수가 세계 최강을 상대로 먼저 두 세트를 따는 기염을 토했지만, 너무 아쉽게도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직접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승부를 떠나 탁구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준 명승부였습니다. 정영식은 귀공자 같은 외모와는 달리 아주 독한 선수입니다. 별명이 ‘연습벌레’죠.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이 연습벌레는 선수생활 중 가장 많은 연습을 소화했습니다. 만리장성을 넘어 금메달에 한번 도전하겠다는 일념으로 그 엄청난 훈련을 치러낸 겁니다. 이는 탁구계에서는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인도, 탁구인들도 내심 대이변을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마롱과의 경기도 초반에는 그렇게 진행됐죠. 하지만 마롱 선수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냉정하게 프로페셔널의 입장에서 진단하면 그게 실력이고,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롱 선수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완벽한 세계 1위로 한 번 지면 끝장인 개인전에서 그가 가지는 부담감은 어쩌면 정영식 선수보다 더 심했을 겁니다. 여기에 상대(정영식)의 초반 공세에 먼저 두 세트를 내줬으니, 얼마나 흔들렸겠습니까? 그걸 이겨낸 겁니다. 그러니 세계 1위인 것이죠. 정영식 선수의 패기를 칭찬함과 동시에 마롱 선수의 이런 자세도 우리가 꼭 배워야합니다. 더욱 집중해 최고의 기술로 경기를 뒤집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영식 선수의 다음입니다. 둘 중 하나 즉, '모 아니면 도'일 것입니다. 마롱과의 경기를 보약으로 삼아 한 계단 더 성장하거나, 아니면 이번을 탁구인생의 꼭지점으로 삼아버리고 마는 것이죠.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안타깝게도 후자의 길을 걷는 선수들도 제법 많습니다. 반드시 정영식 선수가 전자의 루트를 밟아야 한다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중학생이던 만 16살에 국가대표 선발돼 처음 국제대회에 나갔는데 하필이면 첫 상대가 북한선수였습니다. 당시는 남북대립이 워낙 심해 부담이 컸습니다. 저는 분전했지만 아쉽게 졌습니다. 충격이 컸고, 이후 슬럼프에 시달렸습니다. 다행히도 나이가 어렸던 까닭에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고 18살에 아시안게임 우승, 20살에 올림픽 금메달을 땄으니 참 운이 좋았습니다. 정영식 선수도 만 24살입니다. 아직 선수생활이 많이 남았습니다. 주세혁 선수(36)에 비교하면 앞으로 3번까지도 올림픽에 더 도전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출전한 이번 올림픽의 경험이 정영식 선수에게 보약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번 올림픽을 준비한 마음으로 계속 운동을 하면 분명 세계제패의 기회가 올 것입니다. 다행히도 정영식 선수의 마인드가 워낙 긍정적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32강에서 한 수 아래의 상대에게 3-4로 역전패를 당한 이상수 선수도 격려하고 싶습니다. 첫 올림픽에, 그것도 선배 주세혁 선수가 양보한 출전권을 받아 나선 것이기에 지금 심적으로 아주 힘들 겁니다. 얼마나 미안하겠습니까? ‘닥공’이라는 별명답게 이상수 선수의 공격력은 중국선수 못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 큰 이변을 연출하기도 하는 겁니다. 여기에 정영식 선수 못지 않은 노력형이기에 발전가능성도 아주 높습니다. 문제는 강약조절이 약하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100의 힘으로 치려고 하다가도 상황이 녹록지 않으면 70의 힘으로 줄여서 칠 줄 알아야합니다(동호인들은 잘 아실 겁니다). 이상수 선수는 아직 젊어서 그런지 이런 점이 부족합니다. 지도자들이 이런 섬세한 부분을 잘 잡아준다면 큰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지희는 경험부족, 서효원은 준비부족

리우 현지에서 남자 단체전을 앞두고 맹훈련을 하고 있는 한국 남자탁구의 맏형 주세혁.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뉴시스]
리우 현지에서 남자 단체전을 앞두고 맹훈련을 하고 있는 한국 남자탁구의 맏형 주세혁.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뉴시스]

여자도 많이 아쉽습니다. 전지희 선수는 올림픽 전 그 상승세가 대단했습니다. 오픈 대회만 나가면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이들 기대했죠. 그런데 사실 저는 이때부터 조금 생각이 달랐습니다. 올림픽이 아니면 상관이 없습니다. 올림픽의 부담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탁구는 멘탈이 미치는 영향이 큰 관계로 이런 점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전지희 선수는 올림픽 전에 랭킹이 급상승했습니다(세계 11위). 이렇게 갑자기 랭킹이 높아지면 정작 올림픽 무대에서는 예전에는 비슷했지만 지금은 자신보다 랭킹이 낮은 선수를 만나면 부담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실제로 4라운드(16강)에서 1-4로 완패를 당한 유맹유(싱가포르)는 전지희가 최근에 잘 지지 않았던 선수입니다. 전지희도 첫 올림픽 출전인 만큼 적당한 세계랭킹을 유지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과 같은 국내훈련에 더 치중했다면 오히려 결과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예전에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을 그렇게 준비했습니다). 전지희 선수도 정영식 선수와 같은 나이인 만큼 다음 올림픽이 더 기대됩니다. 서효원 선수(29)는 불운이 겹쳤습니다. 부상 및 여러 주변요인으로 인해 하고 싶은 만큼 올림픽 준비를 하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역시 16강에서 대만의 쳉이칭에 3-4로 패했는데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여자부의 경우 북한 김송이 선수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 여자선수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국제대회에 많이 출전하지 않아 랭킹이 낮은 것이지 실력은 사실상 세계 10위권 이내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선수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훈련량이 많고, 정신력까지 좋죠.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목숨 걸고 탁구를 하니 큰 대회에서 이변 아닌 이변을 곧잘 일으키는 겁니다. 같은 한민족이고, 탁구의 경우 단일팀으로 세계 탁구사를 장식한 적이 있기에 북한선수들의 선전도 응원합니다. 남자 단체전은 꿀대진

단체전은 여자보다 남자가 메달 획득의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물론 공은 둥글기에 충분히 이변이 가능합니다. 코리아단일팀으로 나간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 때도 당초에는 남자팀 전력이 더 좋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죠. 남자는 예선탈락, 여자 우승). 일부에서는 한국남자가 4강에서 중국을 만나기 때문에 대진운이 없다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일본, 독일, 대만, 홍콩, 포르투갈이 모두 반대편 조로 쏠렸습니다. 자칫 16강, 8강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위험이 아주 낮아진 셈입니다. 물론 승승장구하다가 4강전에서 중국마저 꺾는 파란을 연출한다면 그 자체로 금메달급 쾌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승산이 있는 복식을 잡아주고, 단식 두 경기에 나서는 주세혁이 1승을 챙기고, 개인전 탈락으로 독을 품고 있을 정영식과 이상수 중 한 명이 일을 낸다면 대이변도 가능합니다. 오더가 잘 나와야 하는데 주세혁 선수가 유독 전형이 안 맞는 쉬신을 피하고, 장지커와 겨루게 된다면 더욱 좋습니다. 또 정영식 선수가 마롱과 리턴매치를 벌이면 흥미롭지 않겠습니까? 중국선수들의 심리를 봐도 개인전보다는 단체전이 우리에게 더 승산이 있습니다. 세계 최강 3명으로 구성된 중국팀은 단체전의 경우 ‘혹, 내가 져도 다른 선수가 만회하겠지’라는 믿을 구석이 있습니다. 한 번 지면 끝장인 개인전과는 그 집중력이 좀 다릅니다. 그래서 단체전에서 이변이 많이 나오는 겁니다. 또 절대강자 중국에 패한다고 해도, 동메달결정전에서 올림픽 2회 연속 메달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반대편 조를 보면 독일과 일본이 4강에 올라올 확률이 높은데 3/4위전의 상대가 독일이라면 승산이 60%, 일본이라면 40% 정도라고 보면 무난할 듯합니다. 어쨌든 메달이 눈에 보이는 상황인 것이죠. 탁구는 매년 브라질오픈이 열리는 까닭에 개인적으로 리우에 여러 번 가 봤습니다. 이곳이 생각보다 어려운 게 많습니다. 시차부터 적응하는 데 최소 열흘은 걸리는 것 같습니다. 올림픽 초반 다른 종목에서도 한국의 메달유망주들이 부진하고 있는데 이런 이유가 클 것입니다. 올림픽도 중반으로 접어든 만큼 탁구는 물론이고, 다른 한국선수들의 선전이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삼성생명탁구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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