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싱글맘 불법추심’ 사건 1심 선고 앞둬

스스로 목숨 끊은 피해자 지인들 만나보니

취약계층 여성들, 불법사채 올가미에 무방비

초고금리에 지인들에게 협박 문자로 불법추심

사채·추심업자 김모씨 “협박은 아니었다” 발뺌

불법추심업자 김모 씨가 ‘30 싱글맘 사건’의 피해자 심씨의 지인들에게 뿌린 협박 메시지. 김씨는 그녀의 딸과 아버지 등 가족의 얼굴을 배포하며 심씨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중시켰다. [독자제공]
불법추심업자 김모 씨가 ‘30 싱글맘 사건’의 피해자 심씨의 지인들에게 뿌린 협박 메시지. 김씨는 그녀의 딸과 아버지 등 가족의 얼굴을 배포하며 심씨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중시켰다. [독자제공]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지급일 2024년 9월 6일 상환일 2024년 9월 12일 오후 1시. 대출금액 90만원.’

차용증 한장이 1000만원짜리 협박장이 됐다. 지난해 9월 여섯 살 딸을 둔 30대 싱글맘은 그렇게 무너졌다.

불법 사채업자의 협박에 시달리던 30대 싱글맘 심모(37) 씨는 지난해 9월 지방의 한 펜션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유서에 ‘다음 생에서도 사랑한다. 사랑한다. 내 새끼. 사랑한다’라고 적었다. 남겨둔 딸을 향한 애틋한 사랑이 묻어나 더 비극적이었다.

그리고, 사채업자에게 빌린 금액도 빼곡히 담겨있었다.

처음 빌린 금액은 수십만원. 하지만 불과 한 달 만에 1000만원 넘는 무거운 빚으로 불어났다. 연체하면 1분마다 10만원이 추가된다는 조건. 연이율로 따지면 5000%가 넘는 고리대금이었다. 심씨는 돈을 갚지 못했고 사채업자들은 드러내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을, 세상을 충격에 빠뜨린 ‘30대 싱글맘 불법추심 사건’의 1심 선고공판이 오는 11일 예정됐다.

추심 ‘연좌제’로 피해자 고통 가중

헤럴드경제가 사망한 심씨의 지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불법추심 업체는 ‘연좌제’를 통해 심씨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면서 그가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준의 불안을 안겼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비단 심씨만의 몫이 아닌, 협박 문자를 받은 심씨의 지인들의 몫이기도 했다. 30대 싱글맘의 지인 A씨는 지난해 9월부터 정신의학과의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추심업자들이 제 얼굴 사진과 번호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며 제가 빨리 심씨한테 돈을 갚으라고 독촉하라는 말을 했다”며 “심씨가 삶이 제일 많이 망가졌지만 추심업자들의 행동은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진행형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심씨의 주민등록증 사본과 ▷딸의 사진 ▷유치원 주소 ▷집 주소가 담긴 문자 메시지가 무차별적으로 뿌려졌다. 심씨의 지인 A씨의 메시지함에는 “오늘 6시까지 97만원 상환 안 되면 ▷가족 ▷친척 ▷ 지인▷직장 ▷SNS 모든 곳에 차용증 유포 및 추심이 진행된다”는 말을 시작으로 ‘미아리에서 몸을 판다’ ‘돈을 빌리고 잠수를 탔다’ ‘끝까지 추심하겠다’는 내용과 욕설이 가득한 문자 수십 통이 쌓여있었다.

다른 지인 B씨는 해당 대부업체로부터 ‘심씨가 낙태를 하기 위해 돈을 빌렸다’ ‘아버지 명의로 대출을 받았다’ ‘동료들의 개인정보를 중국 보이스피싱 유명 업체에 넘겼다’ 등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비방 문자를 받았다.

심지어 사채업자들은 협박하는 것도 모자라, 딸이 다니는 유치원 교사에게까지 문자 메시지를 보내 심씨를 압박하고 유치원에 직접 전화해 아이를 보러 가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30대 싱글맘 사건’ 피해자 심모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지인들에게 남긴 사과문. 불업사채업자들은 추심하는 과정에서 심씨의 지인들에게까지 협박 메시지를 보내는 등 추심 ‘연좌제’를 시행했다. 이로 인해 심씨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독자 화면 캡쳐]
‘30대 싱글맘 사건’ 피해자 심모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지인들에게 남긴 사과문. 불업사채업자들은 추심하는 과정에서 심씨의 지인들에게까지 협박 메시지를 보내는 등 추심 ‘연좌제’를 시행했다. 이로 인해 심씨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독자 화면 캡쳐]

또 다른 지인 C씨는 제도권 금융에서 배제된 여성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사채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동료의 비극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노동자들이 ‘명품을 사 입고 쉽게 돈 벌려고 몸을 판다’고 손가락질받지만 대부분은 생활 능력이 안 돼서 당장 급전이 필요해서 일을 시작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C씨는 이어 “심씨는 남편이 아이를 낳고 도망친 뒤 양육을 혼자 도맡아 왔다”며 “생활이 어려웠지만 유치원생 딸을 키우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다”고 기억했다.

심씨는 세칭 ‘미아리 텍사스’라 불리는 집창촌에서 성노동자로 생계를 이어온 사람이다.

심씨와 같은 업종에 종사하며 또 다른 추심피해 경험이 있는 D(31) 씨는 “제도권 금융에서 철저히 배제된 이들에겐 결국 불법사채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며 본인이 겪은 피해 경험을 털어놨다.

D(31)씨는 “우리는 4대 보험도 없고 신용도 없어서 1금융권은 아예 쳐다도 못 본다. 무직자인데 누가 돈을 빌려주겠나. 결국 불법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역시 사채로 소액대출을 시도했을 때는 8명의 지인 연락처와 나체사진을 요구받은 경험도 있다고 밝혔다. D씨는 “기한 내에 못 갚으면 그 사진을 지인들에게 뿌리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무서워서 결국 돈을 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채업자들은 대포 인스타 계정을 만든 다음 대포 계정을 통해 심씨가 차용증을 들고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했다. 심씨의 딸과 부친의 사진도 협박의 수단으로 삼았다.

불법추심 사건에서도 2030여성들의 피해가 가장 컸다. 동대문경찰서 서고운 수사과장은 “피해자의 절반이 20~30대 여성으로 대부분 무직자이거나 폐업한 자영업자, 학자금 연체자 등 제도권 대출에서 배제된 이들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여성 피해자 상당수는 성매매 전단지에 얼굴을 합성하거나 나체사진을 유포하겠다는 식의 성적 협박을 받았고 이로 인한 수치심이 신고를 막는 요인이 됐다”고 밝혔다.

사채업자들은 대포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든 뒤 피해자 계정과 친구를 맺고 연체 시 해당 계정을 통해 나체사진을 지인에게 전송하거나 계정에 태그를 걸어 공개했다. 경찰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협박의 확산 속도와 수위가 훨씬 크다”고 분석했다.

불법 추심하려고 개인정보 도용까지 의심돼

현재 서울 종암경찰서는 심씨를 죽음으로 내몬 불법추심 사채업자 김 씨에 대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보완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김 씨가 협박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타인의 SNS 계정을 도용한 정황을 포착하고, 명의자 동의 여부와 공범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압수수색영장을 집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제3자 명의의 계정을 통해 채권추심이 이뤄졌다면 명백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이미 서울북부지법에서 대부업법·채권추심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2023년 7월부터 11월까지 대부업 등록 없이 6명에게 총 1760만 원을 고리로 빌려주고, 이들의 가족과 지인에게 협박성 메시지를 보낸 혐의로 기소됐다. 연이율은 법정이자율을 크게 웃도는 최대 5214%에 달했다.

지난 5월 14일 열렸던 김씨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7년과 추징금 717만 원을 구형하며 “지인에게 흉기 사진까지 보내 협박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씨는 “협박한 사실이 없다”며 대부분 혐의를 부인했고, “잘못한 부분은 반성하고 있다”며 선처를 구했다. 변호인은 “5개월 된 아들과 아내가 처가에 홀로 남아 있다”며 양형 사유를 들었다.

김씨의 대부업법·채권추심법 위반 혐의 1심 선고는 오는 6월 11일 오전 10시,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kimdoyo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