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연준 압박…파월 의장 수사

해싯·베선트·트럼프·파월…변수 4인

통화정책 근본적 주도권 이동 의미

직함보다 발언 하나로 시장 선반영

임기만료 5월까지의 공백기 가늠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청사 건물 개보수와 관련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수사를 개시하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DC에 있는 연준 건물 리모델링 현장을 방문해 파월 의장과 함께 둘러보는 모습.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청사 건물 개보수와 관련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수사를 개시하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DC에 있는 연준 건물 리모델링 현장을 방문해 파월 의장과 함께 둘러보는 모습. [로이터]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수사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파월 의장의 연준 독립성 수성 의지와 무관하게 ‘그림자 연준의장’ 시나리오가 부상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12일(현지시간) 미 법무부가 연준 본부 개보수 공사 처리 과정과 이에 대한 의회 증언을 문제삼아 자신에 대한 형사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수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대보다 느린 속도로 금리를 인하하고 있는 자신을 압박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연준의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공언했다.

파월 의장 수사는 연준에 대통령의 의중대로 금리인하 속도를 낼 것을 주문하면서, 파월 의장에게는 물러나라는 압박을 가하는 조치로 해석된다. 파월 의장은 직을 지키겠다고 다짐했지만, 시장은 이미 ‘차기 권력’을 선반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림자 의장’ 시나리오가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중 차기 연준 의장 후보들에 대한 면접을 마칠 계획이라 보도했다. 파월의 뒤를 잇는 차기 의장 지명자는 빠르면 이달 안에 발표될 전망이다. 통상적인 시나리오는 지명자가 우선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이사의 후임으로 연준 이사회에 합류한 뒤, 5월 파월 의장 임기 만료와 함께 의장직을 넘겨받는 것이다.

시장은 바로 이 5월까지의 ‘공백기’를 주시하고 있다. 금융시장은 공식 직위보다 정책 방향과 메시지를 누가 주도하느냐에 반응한다. 차기 의장 지명자가 지명 직후부터 강한 금리 인하 신호를 반복적으로 보낼 경우, 아직 취임 전임에도 사실상 시장을 움직이는 ‘그림자의 의장’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다. 해싯에 대한 시장의 시선은 곱지 않다. 트럼프의 복심(腹心)인 해싯 위원장이 연준 의장이 되면 백악관의 의중을 반영하는 ‘정치적 연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그림자 의장’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또 다른 핵심 변수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다. 해싯이 의장직에 오르더라도 월가(街) 출신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베선트 장관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그림자 의장’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역설적으로 파월 의장이 ‘그림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파월 의장의 연준 이사 임기는 2028년 1월까지다. 보통 의장 퇴임과 함께 이사직에서도 물러나지만, 정치권이 연준의 독립성을 흔드는 이번 사태로 인해 파월이 이사직에 잔류할 명분이 오히려 커졌다고 볼 수 있다. 파월이 이사로 남을 경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하에 신중한 기존 노선을 지지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는 ‘그림자 의장’이 될 수 있다. 마리너 에클스 전 연준의장이 1948년 의장에서 물러난 이후 1951년까지 이사로 활동했던 전례도 있다. 연준은 대공황·뉴딜정책 시기에 통화정책을 이끌었던 그의 공헌을 기려, 연준 본부 건물에 그의 이름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편, 시장은 금리인하를 압박하기 위한 트럼프의 강수(强手)가 되레 자충수(自充手)가 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면 시장은 더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대형 채권 운용사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압박이 금리를 낮추려는 정책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앙은행의 물가 대응 신뢰성을 훼손할 경우 금융시장에 새로운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국채 금리는 원래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게 되고, 이는 주택담보대출과 기업대출 등 각종 차입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리고리 피터스 PGIM 채권운용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파월 의장 수사에 대해“시장은 연준을 불안정성의 원천으로 인식하며 극도로 예민해질 것”이라며 “축구 선수가 자책골을 넣은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트럼프의 연준 흔들기를 두고 “명백한 ‘위험 회피(risk-off)’ 요인”이라며 “중·장기적 파장을 동반한 제도적 규범 훼손”이라고 지적했다.

행정부가 중앙은행 의장을 표적 수사하고, 이에 의장이 정면으로 반발하는 모습은 어느 모로 보나 장기 국채 금리를 상승 방향으로 자극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글로벌 채권 운용사인 DWS아메리카스의 고정수익 부문 책임자인 조지 카트람본은 “행정부는 장기물 금리 상승을 원하지 않지만, 연준 독립성에 대한 의문을 키우는 것 자체가 장기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브라운브라더스해리먼(BBH)의 글로벌 시장 전략 총괄인 엘리아스 하다드는 “파월은 그동안 정치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매우 직설적으로 대응했다”며 “이 같은 조치는 연준의 물가 대응 신뢰성을 훼손하고,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약화시키는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엘리사벳 코펠만 SEB 이코노미스트도 “연준과 백악관의 공개 충돌은 시장에서 결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신용도에 대한 위험 프리미엄이 높아지고, 이는 장기 국채 금리에 상방 압력을 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지연· 정목희 기자


sj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