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90개 크기의 국립세종수목원

세 잎 붓꽃 형상화한 사계절전시온실

한국전통정원엔 고려 연꽃 볼 수 있어

‘2026 한글런’ 내부 관람로 달릴 기회

‘사계절전시온실’과 국립세종수목원 전경 [국립세종수목원 제공]
‘사계절전시온실’과 국립세종수목원 전경 [국립세종수목원 제공]

[헤럴드경제=김명상 기자]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토해내는 열기가 잦아들 무렵, 도심의 경계선 너머로 거대한 초록빛 장막이 모습을 드러낸다.

네모반듯하게 구획된 행정수도의 회색 스카이라인을 비집고 들어선 녹색 지대. 인공의 도시가 내어준 가장 넓은 숨구멍이다. 투명한 유리 벽 너머로 발을 들이는 순간 도시의 규칙적인 소음은 일순간 잦아들고, 이국적인 생명들이 뿜어내는 농밀한 숲의 향기가 대기를 맴돈다.

일상의 중심부에 자리한 국립세종수목원의 풍경은 도시와 자연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 답안과도 같다.

도심에 들어선 거대한 녹색 공간

희귀특산식물원 전경 [국립세종수목원 제공]
희귀특산식물원 전경 [국립세종수목원 제공]

국립세종수목원의 정문을 지나면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는, 완만한 평지가 펼쳐진다. 험준한 산자락을 깎아 만든 일반적인 산지형 수목원과 달리, 이곳은 평지 도심형 수목원이다. 도심형 수목원 중에선 국내 최대 규모다. 축구장 90개를 합쳐놓은 65헥타르(ha) 부지에는 총 4367종, 248만여 본의 식물 자원이 자라고 있다.

국립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명성도 높다. 2020년 10월 문을 연 이래 개원 5년 8개월 만인 지난 6월 13일 누적 관람객이 500만 명을 돌파했다. 산술적으로 국민 10명 중 1명이 다녀간 셈이다. 2023년과 2025년에는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면서 단순한 식물원을 넘어 중부권 핵심 문화 관광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마티스와 부루마블이 있는 온실

세 잎의 붓꽃을 형상화한 ‘사계절전시온실’ [국립세종수목원 제공]
세 잎의 붓꽃을 형상화한 ‘사계절전시온실’ [국립세종수목원 제공]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세 잎의 붓꽃을 형상화한 ‘사계절전시온실’이다. 사계절전시온실은 중앙 로비를 기점으로 지중해온실, 열대온실, 특별전시온실 등 3개 관으로 나뉜다. 전시 공간이 넓어 전체를 상세히 둘러보는 데만 4시간 가까이 소요될 만큼 방대하다.

약 2200㎡ 규모의 지중해온실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지중해성 기후대에서 서식하는 식물 227종 1960본으로 채워져 있다. 내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아파트 9층 높이의 전망대에 다다른다. 그곳에선 온실 내부와 야외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밖으로 나와 오른쪽을 보면 2033년 개원 예정인 국회세종의사당 부지가 펼쳐지고, 앞에는 멀리 솔찬루의 전통 한옥 지붕선이 푸른 녹지 위로 솟아오른다.

‘앙리 마티스가 그린 오색정원’ 전시의 테마 공간  ‘핑크 스튜디오’ [김명상 기자]
‘앙리 마티스가 그린 오색정원’ 전시의 테마 공간 ‘핑크 스튜디오’ [김명상 기자]

지중해온실에서는 오는 12월 31일까지 특별기획전 ‘앙리 마티스가 그린 오색정원’이 열린다. 20세기 색채의 거장으로 불리는 마티스의 작품 세계를 정원에 결합한 전시다. “예술가는 자연을 품어야 한다”고 설파했던 마티스 특유의 강렬한 색감을 실체화해 한 폭의 캔버스 같은 시각적 몰입감을 선사한다. 테마 공간 중 ‘핑크 스튜디오’는 마티스 특유의 생동감이 돋보이는 곳으로,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다.

2층 관람로에서 본 열대온실 [김명상 기자]
2층 관람로에서 본 열대온실 [김명상 기자]

이어지는 열대온실은 2800㎡ 규모로 적도의 온도와 기후 환경을 재현했다. 과거 칠판의 원료로 활용되던 알스토니아를 비롯해 437종 6724본의 열대 식물이 군락을 이룬다. 2층 관람로에 오르면 거대한 야자나무와 고사리류가 빽빽이 들어찬 모습이 마치 영화 ‘쥬라기 공원’의 정글을 연상시킨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식물도 많다. 곤충을 통해 양분을 흡수하는 네펜데스(벌레잡이통풀), 끈끈이주걱 등 식충식물들도 관람객을 맞는다.

열대온실 구역에 있는 네펜데스(벌레잡이통풀) [김명상 기자]
열대온실 구역에 있는 네펜데스(벌레잡이통풀) [김명상 기자]

이곳에서는 티라노사우루스 등 공룡 모형도 볼 수 있다. 담당자는 “과거 특별전시에 썼던 것으로 식물과 함께 배치했는데, 음향과 움직임 때문에 유아가 놀라 우는 민원이 많아 지금은 소리를 끄고 배경처럼만 쓰고 있다”며 웃었다.

특별전시 ‘가든마블: 세계의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상징물인 슈퍼트리 [김명상 기자]
특별전시 ‘가든마블: 세계의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상징물인 슈퍼트리 [김명상 기자]

세 번째 공간인 특별전시온실은 연 2회, 약 6개월 주기로 대주제를 전면 교체하는 가변형 전시장이다. 오는 10월 11일까지는 세계 각국의 정원 문화와 생태를 보드게임 형식으로 풀어낸 특별전시 ‘가든마블: 세계의 정원’을 선보인다. 관람객은 게임판 위를 거닐듯 세계 유명 정원 양식을 탐색할 수 있다. 담양 소쇄원을 재현한 한국 전통정원을 비롯해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싱가포르 등의 정원을 볼 수 있어 작은 세계여행을 해 볼 수 있다.

700년 전 고려 연꽃 자라는 전통정원

한국전통정원과 창덕궁의 주합루를 바탕으로 지은 ‘솔찬루’ [국립세종수목원 제공]
한국전통정원과 창덕궁의 주합루를 바탕으로 지은 ‘솔찬루’ [국립세종수목원 제공]

온실 밖 야외 공간의 중심축인 한국전통정원은 외국인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핵심인 궁궐정원은 궁궐 기록화인 국보 동궐도(東闕圖)에 묘사된 창덕궁 후원 주합루와 부용정 일대를 실물 크기로 고증해 조성했다. 수목원은 문화재 명칭을 직접 사용하는 대신 세종시의 고유성을 반영해 주합루는 ‘솔찬루’, 부용지는 ‘도담지’로 명명했다.

솔찬루와 정문에 해당하는 가온문 전경 [김명상 기자]
솔찬루와 정문에 해당하는 가온문 전경 [김명상 기자]

솔찬루로 오르는 길에 조성된 계단식 화단 ‘화계(花階)’는 조선 초기 원예서 ‘양화소록’의 9품계 원칙을 반영해 위로 올라갈수록 품격이 높은 식물을 배치해 ‘품계별 정원’을 체험하도록 설계했다. 솔찬루의 입구에 해당하는 가온문 옆 울타리에는 향나무 대신 단풍나무를 심어 가을 단풍 경관을 극대화했다.

약 700년 전 고려시대 연꽃이 피어난 국립세종수목원 부용지의 ‘아라홍련’  [김명상 기자]
약 700년 전 고려시대 연꽃이 피어난 국립세종수목원 부용지의 ‘아라홍련’ [김명상 기자]

앞쪽의 연못 부용지에 식재된 연꽃은 유서 깊은 내력을 자랑한다. 국립세종수목원 담당자는 “부용지의 ‘아라홍련’은 경남 함안 성산산성 유적지에서 발굴된 약 700년 전 고려시대 연꽃 씨앗이 피어나 자란 것”이라며 “함안군이 발아·증식한 종근을 분양받아 심은 것으로 관람객들은 세종 도심 한복판에서 고려 중·후기의 연꽃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희귀특산식물온실 내부 [국립세종수목원 제공]
희귀특산식물온실 내부 [국립세종수목원 제공]

건너편 야외 구역의 희귀·특산식물전시온실은 점차 사라져 가는 희귀식물과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식물을 수집·보전·전시하는 공간이다. 나도풍란, 한란, 솔잎란 등 난초과 식물을 비롯해 사라져 가는 한국 고유의 식물을 다수 관찰할 수 있다.

‘한글런’ 대회로 특별히 즐기는 식물원

국립세종수목원은 올가을 문화·체육 행사와 연계한 새로운 시도에 나선다. 내달 9일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기념해 헤럴드미디어그룹과 세종특별자치시가 공동 주최하는 ‘2026 한글런’의 공식 코스에 수목원 내부 관람로가 처음으로 포함된 것이다.

청류지원 [국립세종수목원 제공]
청류지원 [국립세종수목원 제공]

그간 수목원에선 식물 보호를 위해 체육 행위가 제한됐지만, 올해 한글런에선 수목원 내부의 길을 달리며 완연한 가을 정원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한글런 접수 기간은 오는 20일까지이며, 자세한 내용은 ‘2026 한글런’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강신구 국립세종수목원장은 “예전에는 (수목원은) 동적인 행사에 보수적인 편이었지만, 영국 큐 왕립식물원 등 세계적인 수목원들이 내부 공간을 적극 개방하는 추세를 참고해 코스를 열게 됐다”며 “단순한 체육 행사를 넘어 참가자들이 식물 생태를 돌아보고 환경 보호 메시지를 체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terr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