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세종대 교수

김용석 세종대학교 화학과 교수
김용석 세종대학교 화학과 교수

오늘은 정월대보름이다. 새 해의 첫 보름달을 맞이하는 날로, 예로부터 묵은 것을 털어내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며 한 해 풍요와 공동체의 안녕을 비는 날이었다. 한국 석유화학 산업도 지금 바로 그런 시점에 서 있다. 한때 ‘산업의 쌀’이라 불리며 대한민국 수출의 든든한 기둥이 되었던 이 산업은 이제 구조적 한계를 정리하고 경쟁력을 재구축해야 할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충남 대산산단의 ‘대산 1호 프로젝트’ 사업재편 승인은 의미 있는 이정표다. 연산 110만 톤 규모의 NCC(나프타분해설비)를 과감히 중단하고, 정유에서 기초유분까지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를 통해 원가 구조를 개선하기로 했다. 이는 단순한 합병이 아니라, 과잉 설비를 자발적으로 감축하고 고부가·친환경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그동안 지연되던 구조조정이 본격적인 실행 단계로 들어섰다는 점에서 산업 전반에 주는 메시지도 크다.

기업들의 과감한 결단에 맞춰 정부 역시 이에 화답했다. 신규 자금지원을 포함한 최대 2조원 규모의 금융지원은 물론 세제 지원, 인허가 규제 합리화, 지역경제 고용 및 R&D(연구·개발) 지원까지 망라한 종합 패키지를 내놓았다. 기업이 재무 부담을 완화하면서 설비 통합과 고부가 전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 것이다. 즉, 기업이 구조조정의 고통에만 매달리지 않고 미래 투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펼친 것이다. 이번 지원은 ‘구조조정을 해도 혼자가 아니다’라는 분명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제 정부의 지원 패키지도 확정 발표됐고, 구조개편의 성패는 기업들의 실행력에 달려 있다. 사업재편 승인 이후 통합 절차, 설비 감축, 투자 전환이 계획대로 신속히 이행되어야 시장의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

대산산단의 사업재편 1호 프로젝트 승인은 출발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석유화학 산업 전체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는 여수와 울산 산단의 사업재편 역시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 왜냐하면 석유화학 산업은 기업간 공급망의 연계가 커서 개별 기업이 아닌 산업 전체의 경쟁력 회복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와 결단이다. 구조조정은 시기를 놓칠수록 비용이 커지고 선택지는 줄어든다.

현재 여수와 울산에서는 사업재편 최종계획안 제출을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생산 규모가 크고, 이해관계자도 많아 논의가 어려운 만큼이나, 사업재편시 얻을 수 있는 효율화 효과 또한 크다. 무엇보다 사업재편의 궁극적 목표는 단순 설비 감축이 아니다. 산업의 방향 자체를 질적 고도화로 전환하는 데 있다. 반도체, 이차전지, 미래차, 우주항공 등 첨단 산업의 경쟁력은 고기능 소재에서 비롯된다. 우리 석화산업이 첨단 소재 산업 생태계의 핵심 기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신속히 재편될수록, 개별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경쟁력도 함께 강화될 수 있다.

새해 첫 보름달이 밝았다. 대산에서 피어오른 구조개편의 불씨가 여수와 울산으로 번져 우리 석유화학 산업의 미래를 보름달처럼 밝히며 환히 비추기를 기대한다.


ke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