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성적표 뒤 숨겨진 ‘수익 잔혹사’

“따놓은 당상인 줄 알았는데”…물 건너간 제작사 IPO

영화관 사업도 지지부진…투자 회수 통로가 막혔다

인수·합병(M&A) 시장에 딜은 넘쳐납니다. 멀리서 보면 다 좋아 보입니다. 화려한 성장 스토리, 그럴듯한 숫자.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물음표가 생깁니다. “왜 지금일까?” “이 가격이 맞나?” “이 회사 말대로 될까?”

‘줌-인 딜리전시’는 딜의 이면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봅니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 너머 딜의 속 사정을 확대합니다. 재무제표의 이면부터 계약 구조, 산업환경, 규제의 틈새까지 파고듭니다. 딜을 읽는 진짜 눈, 그 출발점에 같이 서보시죠.

넷플릭스 인기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AP]
넷플릭스 인기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AP]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지난해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부터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요리 예능 ‘흑백요리사’, 그리고 전 세계가 시즌2·3이 나오길 숨죽여 기다렸던 ‘오징어 게임’까지…. 한국 콘텐츠는 이제 해외 시장에서도 믿고 보는 브랜드가 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콘텐츠 사업을 결산하면서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글로벌’을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K-콘텐츠의 비상: 산업 특성과 성장 요인 분석’ 보고서에서 “K-콘텐츠는 높은 완성도와 작품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가는 중”이라고 분석하며 최근 2년(2023~2024년)간의 성과를 지표로 제시했다. 해당 기간 K-콘텐츠는 넷플릭스 전체 영화·TV쇼 콘텐츠의 7%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비영어권 글로벌 상위 100편의 작품 중 30%를 점유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K-콘텐츠가 거둔 눈부신 성과와 달리 유관 산업을 바라보는 투자은행(IB) 업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자본시장에선 ‘흥행은 대박인데 수익은 쪽박’이라는 비명만 터져 나온다. 왜일까. K-콘텐츠의 수익 잔혹사를 들여다봤다.

흥행 대박에도 제작사는 ‘울상’

[헤럴드DB]
[헤럴드DB]

흔히 사람들은 작품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높으면 제작사도 그에 비례해 떼돈을 벌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콘텐츠 산업의 특수성을 간과한 오해일 뿐 실상은 다르다. 이른바 ‘시청률의 함정’이다. 현재 콘텐츠 제작사의 비즈니스 모델은 크게 ‘외주 제작’과 ‘지식재산권(IP) 보유’ 등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각 모델마다 현실적인 제약이 투자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선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부터 제작비 전액과 일정 수준의 수수료(마진)를 받는 ‘외주 제작’ 방식은 손실 위험을 플랫폼에 떠넘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처럼 역사적 흥행을 기록해도 제작사가 얻는 추가 수익은 없다. 플랫폼이 IP를 독점하는 구조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작품 성적표가 좋아도 제작사가 쥐는 건 고정 마진밖에 없다”면서 “‘재주는 제작사가 넘고 돈은 플랫폼이 가져간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정적이지만 성장의 상한선이 명확한 셈이다.

반면 제작사가 리스크를 직접 짊어지는 ‘IP 보유형’ 모델은 높은 수익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최근 시장 환경에선 실패에 따른 타격이 지나치게 크다. 주연급 배우들의 출연료를 포함한 제작비가 치솟으면서 손익분기점 달성의 문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가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할 경우 수백억원의 손실을 제작사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데, 이는 곧 투자자의 원금 손실로 직결된다”라고 설명했다.

SLL중앙, IPO 기한 두고 FI와 ‘막판 진통’

[123rf]
[123rf]

이러한 수익 구조의 불확실성은 자본시장에서 회수 지연 사태로 번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SLL중앙이다.

SLL중앙은 지난 2021년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 당시 1조2000억원 안팎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프랙시스캐피탈과 중국 텐센트 등으로부터 약 4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만 해도 K-콘텐츠의 위상에 힘입어 IPO는 ‘따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낙관론에 그쳤다. 당초 SLL중앙과 투자자들은 ‘3년 내 상장(2024년 3월)’을 조건으로 주주간계약을 맺고 상황에 따라 각 1년씩 총 두 차례 만기 연장 옵션을 뒀다. 문제는 이미 두번의 연장 기회를 모두 소진했다는 점이다. 최종 상장 기한이 당장 다음달로 다가왔음에도 IPO 소식은 여전히 요원하다.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려던 재무적 투자자(FI)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SLL중앙과 FI들은 IPO 기한을 추가로 1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오는 3월 IPO 성사는 불가능해진 상황”이라며 “회수 지연이 불가피한 만큼 투자자들은 사태 해결을 위해 회사 측과 다각도의 보완책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어 “상장 기한 유예에 따른 보장 수익률 조정 등 민감한 조건들이 얽혀 있어 최종 합의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콘텐트리중앙, ‘약속의 날’ 또 넘겼다

모회사인 콘텐트리중앙 역시 FI인 JKL파트너스와의 관계에서 유사한 숙제를 안고 있다.

JKL파트너스는 지난 2021년 콘텐트리중앙에 전환사채(CB) 형태로 1000억원을 투자하며 성장을 지원했지만, 콘텐츠 업황 악화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엑시트(투자금 회수)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

당초 지난해 11월이었던 상환 기한을 올해 1월로 미루며 버텨온 콘텐트리중앙은 다시 배수진을 쳤던 이달 27일 마저 넘기게 됐다. 상환 기한이 미뤄질 때마다 콘텐트리중앙이 감당해야 할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당초 7.58%였던 이자율은 첫 번째 연장 당시 7.84%로 상향 조정됐고, 지난 2월로 기한을 미루면서 7.95%까지 올랐다.

양측은 상환 시점을 또다시 유예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벌써 세 번째 기한 연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명확한 로드맵이 나오지 않으면서 투자자와 발행사 모두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교착 상태가 길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제 시장의 눈은 글로벌 대체투자 자산운용사인 아레스매니지먼트(아레스)의 행보로 쏠리고 있다. 최근 아레스가 콘텐트리중앙에 약 3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아레스 투자금 유치 성사 여부가 기존 FI들의 엑시트 물꼬를 틀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롯데-메가박스 ‘빅딜’에도 차가운 시선

텅 비어있는 영화관 [게티이미지뱅크]
텅 비어있는 영화관 [게티이미지뱅크]

콘텐츠 제작 시장만 위기인 건 아니다. 오프라인 거점인 영화관 산업 역시 깊은 늪에 빠졌다.

생존을 위해 거대 그룹들은 ‘빅딜’이라는 정면 돌파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해 5월 롯데그룹과 중앙그룹은 각사의 극장·영화 사업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청사진을 그리면서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 간 합병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합병 논의의 본질은 양사가 구축한 방대한 콘텐츠 밸류체인을 하나로 묶어내는 데 있다. 롯데시네마(영화관)와 롯데엔터테인먼트(투자배급사), 샤롯데씨어터(극장)를 거느린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영화관),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투자배급사), 플레이타임중앙(키즈 테마파크)까지 보유한 메가박스중앙이 단일 체제로 통합되는 초대형 작업이다.

업계에선 합병법인의 기업가치가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결합 심사를 검토 중일 만큼 미디어 시장을 뒤흔들 ‘공룡의 탄생’이 예고된 상태다. 다만 투자 유치 작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덩치를 키우는 것만으로는 영화관 산업의 구조적 쇠퇴를 막기는 역부족이라는 시각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대규모 자금 수혈을 위한 밑그림이 그려지는 모양새다. 국내 크레딧 PEF 운용사인 IMM크레딧앤솔루션은 현재 합병법인에 최대 4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번 딜에 전통적인 사모펀드 대신 크레딧 운용사가 전면에 나서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콘텐츠 업황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가치를 산정해 지분에 투자하는 방식보다는, 원금 보호와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우선시하는 크레딧 투자가 발행사와 투자자 모두에게 현실적인 대안이 됐다는 분석이다.

영화관은 어떻게 ‘자본의 무덤’이 되었나

CJ CGV 영화관 내부 모습. [연합]
CJ CGV 영화관 내부 모습. [연합]

영화관 산업은 개별 콘텐츠의 흥행 실적에 따라 수익 구조가 요동치는 데다, 불경기에 소비자가 쉽게 지갑을 닫는 전형적인 ‘경기 민감형’ 업종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패러다임의 변화에 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미디어 소비의 주권이 OTT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의 발길이 예전만 못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OTT의 부상으로 극장만이 줄 수 있던 특별함이 사라졌다”며 “현재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 불황의 여파가 아니라 극장 산업 자체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영화관 수요는 꺾였지만 거대 멀티플렉스를 유지하기 위한 시설 관리비와 임대료 등 고정비 부담은 여전하다는 점도 문제다. 매출이 줄어도 나가는 돈은 줄지 않는 ‘구조적 덫’에 빠진 셈이다. PEF 업계 관계자는 “이젠 비용 절감이나 일시적인 흥행작 한두 편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영화관 산업의 수익성을 반등시키기엔 한계가 뚜렷하다”고 전했다.

실제 과거 극장가 호황기에 베팅했던 PEF의 투자금이 수년째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CGI홀딩스(CJ CGV 아시아 법인)는 지난 2019년 프리IPO 투자를 유치했으나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며 상장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투자 회수 압박을 견디지 못한 MBK파트너스, 미래에셋증권PE 등 FI들은 결국 지난해 7월 CJ CGV를 상대로 ‘동반매도요구권(드래그얼롱)’을 행사했다.

이처럼 FI들이 강제 매각 절차에 돌입하게 된 건 CJ CGV의 우선매수권(콜옵션) 포기가 결정적이었다. 당초 CJ CGV는 상장 실패 시 일정 수익률을 더해 FI 지분을 되사주기로 약정했으나 재무 여력이 악화되자 권리 행사를 포기했다.

이후 FI들은 모건스탠리를 주관사로 선정하고 CGI홀딩스 매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업황 회복이 더딘 탓에 마땅한 원매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강력한 회수 수단마저 무색하게 매각 작업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터키 법인인 마르스엔터테인먼트(MARS Entertainment)도 마찬가지다. IMM프라이빗에쿼티 등 FI들이 CJ CGV와 함께 8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으나, 리라화 가치 폭락과 팬데믹이 겹치며 10년 가까이 자금이 묶여 있는 상태다.

IMM PE 등은 지난 2021년부터 대주주 지분까지 끌어와 강제 매각할 수 있는 드래그얼롱 권리를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5년째 이 강력한 카드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계약서상으로는 명확한 권리지만 드래그얼롱을 발동하더라도 이를 받아줄 원매자가 있어야 실익이 있는 것”이라며 “현재 극장 업황과 터키 현지 상황을 고려할 때 마땅한 매수 후보자를 찾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권리 행사의 효용성이 사라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혹한기 뚫고 생존하려면?…결국 ‘IP 중심’ 반등 꾀해야

물론 모든 통로가 막힌 것은 아니다. 업계 찬바람 속에서도 체질 개선에 성공한 기업들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업계에선 궁극적으로 독자적인 IP를 확보하고 제작 비용을 정교하게 통제할 수 있는 제작사만이 생존의 문턱을 넘게 될 것이라고 냉정하게 분석한다. 다만 이같은 목표가 단기간에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인 만큼 콘텐츠 산업의 혹한기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시장 관계자는 “올해는 K-콘텐츠 관련 산업에 투자한 FI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며 엑시트 압박이 정점에 달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며 “펀드 만기에 쫓긴 투자자들이 자금 회수를 서두르기 시작하면 업계 전반의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시장 재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