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히 병원에 걸어 들어갔던 환자가 ‘오후’에는 싸늘하게 식어서 돌아옵니다. 가족들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을 시작합니다. 적금을 깨고, 집을 팔아 마련한 돈은 ‘환자가 왜 죽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쓰입니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이 의료기관의 책임을 입증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의료분쟁은 크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한 조정·중재 신청(연평균 약 2100건), 민사소송(연평균 약 1000건·보험연구원 연구자료) 등을 통해 이뤄집니다. 매해 ‘3000건 이상’의 의료분쟁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펼쳐지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법무법인 오킴스와 함께 다양한 의료분쟁 판례를 분석하고, 다윗이 어떻게 해야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지 톺아보려 합니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메디컬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메디컬 생존 게임은 월 2회(격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헤럴드경제=고재우 기자] 그날의 수술이 A씨 몸과 마음에 새긴 상처는 참혹했다. 지난 2011년 2월, B병원에 내원한 A씨는 치과 의사 C로부터 양측 악관절(턱관절)강직증 진단을 받았다.
양측 악관절강직증이란 양쪽 턱관절이 굳어서 입이 벌어지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공간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입을 벌릴 수 없어, 음식 섭취, 발음 등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턱부위 외상, 감염, 관절염 등이 방치 시 관절이 굳어지며 나타난다.
같은 해 3월 23일, B병원은 A씨에게 양측 악관절 성형술을 했다. 쉽게 말해 고장 난 턱관절을 깎고 다듬은 뒤, 재조립해 넣는 수술이다.
문제는 수술 도중 발생했다. C 치과 의사가 A씨의 오른쪽 하악과두(턱관절)를 떼 내는 과정에서 수술 도구인 ‘프리어’가 3㎝가량 파손된 것이다. 부러진 프리어는 A씨 체내로 들어갔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부위에서 출혈이 발생했고, C 치과 의사는 프리어를 꺼낼 새도 없이 압박 지혈을 시행했다. 이후 그는 프리어 파편을 찾기 위해 엑스레이 촬영까지 동원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그 상태로 C 치과 의사는 수술 부위 봉합 등 모든 수술을 종료했다.
A씨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C 치과 의사는 B병원 신경외과에 협진을 의뢰했다. 프리어 파편이 발견된 곳은 우측 전두엽, 이미 우측 뇌출혈 및 뇌부종 등이 확인된 뒤였다.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2011년 3월 24일, B병원 신경외과 의료진은 A씨에게 우측 두개골 절제술 및 혈종제거술을 시행했다. 같은 해 4월 5일에는 염증 제거를 위해 광범위한 우측 뇌 조직 절제술이 있었고, 그때에야 프리어 파편도 함께 제거됐다. 무려 ‘2주’ 동안, A프리어 파편이 뇌에 박힌 채 A씨는 사경을 헤맸다.
결과는 참혹했다. 영구적인 뇌 손상을 입은 A씨는 전반적인 신체 기능이 크게 저하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스로 몸을 가누거나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A씨 “주의 소홀” vs B병원 “불가항력”
A씨 가족으로서는 청천벽력이었다. 무엇보다 수술 중 프리어가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신경외과와 신속한 협진을 하지 않은 점 ▷프리어 파편이 뇌까지 도달하게 해 뇌출혈을 일으킨 점 ▷뇌출혈로 인해 뇌 절제술까지 받게 된 점 등을 지적했다.
특히 우뇌 대부분을 절제하면서 A씨는 음식을 먹을 수도, 가족들과 대화할 수도 없었다. 신체 거동이 불가능하게 된 A씨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이 애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민법에 따른 손해 배상 청구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B병원을 관리하는 학교법인의 생각은 달랐다. 우선 B병원은 의료진이 과도한 힘을 줘서 프리어가 파절된 것이 아니라 A씨의 ‘피로 골절’ 탓이라고 주장했다. 피로 골절이란 작은 충격이 반복적으로 쌓여 뼈에 미세한 금이 가있는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 병원 측 과실보다는 A씨의 관리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술 전 수술기구 결함 여부를 살폈고, 이상이 없었다고도 덧붙였다.
프리어 파편이 우측 전두엽 부위로 들어가게 된 이유가 거즈 압박 지혈에 따른 것이란 주장에도 선을 그었다. 손상된 프리어가 두개골 내부까지 들어갔다면 두개골 손상 소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즈 압박 지혈이 임상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시행되는 지혈 조치란 점도 분명히 했다.
C 치과 의사가 프리어 파편을 제거하지 않은 채 수술을 종료한 것에 대해서도 “프리어 파편이 우측 하악와(오른쪽 아래턱뼈)에서 두개골 내부로 이동했을 것이라 예측할 수 없고, A씨에게 별다른 후유증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서 수술을 종료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 “주의의무 소홀…약 3억3000만원 배상”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8민사부(재판장 조휴옥)는 A씨(2억4360만4461원), A씨 남편(800만원), A씨 자녀 D(6744만4896원), A씨 자녀 6명(각 200만원) 등 총 3억3104만9357원을 배상할 것을 판결했다.
C 치과 의사와 B병원이 프리어 파편을 제거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치과 의료기기업체 대광IDM 사실조회 결과, 순천향대서울병원장·경희대병원장 등 진료기록 감정촉탁 결과 등을 종합한 결과는 이렇다.
법원은 ▷B 치과 의사가 프리어에 과도한 힘을 줘 파손하게 했고 ▷거즈 압박 지혈 과정에서 프리어 파편이 두 개강 내 뇌 심부까지 밀려가게 했으며 ▷엑스레이 촬영 후 프리어 파편을 찾지 못했음에도 신경외과 등 협진 없이 수술 종료 등은 모두 인정했다.
이에 따라 A씨가 2회에 걸쳐 뇌수술을 받게 했고, 뇌 손상을 입게 됐다고 봤다. B 병원을 관리하는 학교법인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단 ▷수술 중 프리어가 파손되고, 그 파편이 두 개강 내 뇌 심부로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 ▷B 병원 의료진이 A씨의 상태 및 의식 회복 여부 등을 확인했다는 점 ▷A씨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 하자 신경외과 협진 등을 요청했다는 점 등이 참작돼, 학교법인의 손해배상책임은 ‘80%’로 제한됐다.
A씨 배상액은 근로 능력 상실에 따른 수입·향후 치료비·보조구 비용·간병비 등의 80%와 위자료를 합해 1억9360만4461원, A씨 자녀 D 배상액은 간병비·기왕치료비 등의 80%와 위자료를 더해 6744만4896원이 되는 식이다.
조진석 변호사 “책임 제한 80% 판결 ‘의문’”
조진석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는 학교법인 손해배상책임을 80%로 제한한 법원의 판결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A씨 측이 청구한 ‘약 12억원’ 중 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 액수는 약 3억3000만원에 불과했다.
물론 법원이 이례적인 사례, 사태 발생 이후 환자 관리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책임을 내렸지만, 책임 제한의 사유나 정도가 적정하냐는 것이다.
대전제는 책임 제한 비율이 A씨와 학교법인 모두에 불합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 핵심은 양측 악관절 성형술이 과연 환자가 위험을 감수해야 할 만큼, 위험한 수술이었느냐는 점이다. 상술하면 의사의 실수가 명백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가정해 학교법인의 책임을 감경해 주는 것은 무리라는 뜻이다.
특히 A씨 사례는 C 치과 의사를 비롯한 B병원 의료진이 통상적인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다. 단지 치료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는 등의 이유는 책임을 제한하는 것은 너무 막연하다는 게 조 변호사의 지적이다.
더욱이 B병원을 관리하는 학교법인은 A씨와 형사재판에서 금고 8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조 변호사는 “신체에 대하여 행해지는 의료행위의 특성상 질환의 중증도, 의료행위 자체의 위험성, 기저 건강 상태 등에 따라 환자가 감내해야 할 요소를 책임 제한의 사유로 인정하는 것은 가능하다”면서도 “이 사건과 같이 치과 수술기구가 구강을 넘어 뇌를 손상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책임 제한 사유”라고 강조했다.
특히 “업무상과실치상의 형사 책임이 인정될 사안이라면, 관념적 요소를 들어 책임을 제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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