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적 선율 위에 쓴 몸의 시(詩)
‘욕망의 대상’으로 여성이 추던 춤
금기 깨고 남성이 강한 생명력 보여줘
국내에선 김기민이 원탁 위 첫 주인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스네어 리듬이 작은 북소리를 내며 그 고요한 여정은 시작된다. ‘따다다당 따다다당, 따다다따다다당.’
규칙적 리듬이 청각을 깨울 때 플루트 하나가 선율을 띄운다. 4분의 3박자, C장조. 모난 음표 하나 없이 우아하게 하강하는 선율. 그러다 57번째 마디에 이르면 균열은 시작된다. 매끄럽던 선율이 뒤틀리고, 한 옥타브 안에 머물던 음악은 두 옥타브를 넘나들어 몸집을 키운다. 음역만큼 벌어진 선율은 가시처럼 살갗을 파고든다.
340마디, 17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는 북의 리듬. 그 위로 플루트에서 클라리넷, 바순에서 색소폰이 이어달리기처럼 등장한다. 그렇게 악기 소리가 하나씩 쌓이고 쌓여 음향을 키운다. 벗어날 수 없는 17분의 구조가 만들어낸 단 하나의 거대한 크레센도를 완성한다.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는 붉은 원탁 위에서 다시 시작된다. 손끝, 어깨, 시선…. 미세한 움직임에 숨이 막힌다. 오선지 위 음표처럼 내려앉아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몸의 리듬. 음표가 삼킨 사람일까, 사람이 삼켜버린 음악일까. 고요한 동작이 원탁 아래 37명의 무용수와 일체되면 공기가 달라진다.
이것은 음악이었고 춤이었다. 그러면서 음악도 춤도 아니었다. 반복은 과연 인간을 어디까지 밀어 붙일 수 있을가. 여전히 탐색 중인 ‘미친 예술가’, 두 모리스의 실험이었다. 음악적으로는 고정된 리듬의 엄격함을 유지하되, 무용으로는 성별과 인종, 질병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자유의 상징으로 진화하게 했다.
라벨이 있었기에 베자르가 나왔다
‘볼레로’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시작은 ‘우연’처럼 보일 수 있으나 340마디를 내내 흐르는 것은 집요한 집착이었다. 볼레로는 러시아 출신 무용수 이다 루빈스타인이 라벨에게 의뢰한 발레곡으로, 촉박한 일정에 쫓기다 17분짜리 단일의 크레센도 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1928년 여름 휴가에서 단 하나의 테마를 반복하는 아이디어가 이 곡의 씨앗이었다.
스위스 기계공의 아들이었던 모리스 라벨(1875~1937)에게 예술은 ‘통제된 열정’이었다. 아버지가 발명한 정교한 기계 장치들, 공장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 태엽 인형의 완벽한 반복 운동이 그의 음악에 녹아들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그의 음악을 “가장 완벽한 시계”에 비유하며 그를 ‘스위스의 시계 제작자’라고 불렀다.
‘볼레로’는 그의 내면과도 같다. 1928년 53세. 이미 프랑스의 거장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던 때, 그는 이 곡을 썼다. 내면의 봉인이 풀린 듯한 시기였다.
작은 북은 같은 리듬을 169회 두드린다. 결코 멈출 수 없고, 멈춰서도 안되는 리듬이다. 그 위로 우아하게 하강하는 온음계의 주제 A가 등장한다. 계속 되리라 방심한 순간, 재즈적 변칙이 튀어나온다. 당김음과 플랫 노트가 섞인 주제 B의 선율, 음이탈 없이 정교하게 이어져도 신경을 긁는 듯한 불쾌한 긴장을 만든다. 모든 악기가 포르티시시모(fff)로 폭발하는 그 순간, 봉인은 해제된다.
라벨은 이 곡을 ‘공장의 기계 소리’에서 영감받았다. 그러니 주변에서 그를 휘감았던 모든 소리들이 ‘볼레로’의 영감이 된 셈이다.
1928년 11월 22일, 파리 오페라 극장. 초연이 끝나자 관객은 폭발했다. 한 여성이 “그는 미쳤다!(Au fou!)”고 하자, 라벨은 웃으며 “저 여인이야말로 이 곡을 제대로 이해했다”며 웃었다.
누가 원탁의 주인인가…욕망의 대상이 된 여성
선술집 탁자 위, 스페인 무용수가 춤을 춘다. 농염하고 관능적인 춤사위. 반복되는 리듬을 타는 테이블 위 여성은 음악이 주는 가장 강력한 쾌감을 온몸으로 만끽한다. 라벨은 ‘이국의 취향’보다 ‘리듬의 폭발’을 갈망했으나, ‘볼레로’의 첫 발레(1928)는 지극히 오르가슴적이었다.
모리스 라벨의 집착은 같은 이름의 모리스 베자르를 통해 몸의 언어로 다시 태어났다. 공교롭지만 두 사람의 이름은 같다. 프랑스에선 세기를 거쳐 꽤 흔한 이름이었다.
1961년, 바로 ‘볼레로’의 혁명기가 왔다. 모리스 베자르는 ‘볼레로’를 통해 발레사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베자르 로잔 발레의 주역인 바로 그 ‘모리스 베자르’, 현대 발레계의 전설이다.
베자르는 30여년 전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의 ‘스페인 선술집’ 배경을 지웠다. 무대 중앙에 남겨진 것은 ‘붉은 원탁’. 지름 4.65m의 원형 테이블은 추상적인 열망의 제단이다.
그 위에 한 사람이 선다. ‘라 멜로디(La Mélodie)’라는 이름을 얻은 무용수다. 그는 선율 그 자체다. 멜로디의 아래론 40명의 남성 무용수가 자리한다. 이들은 ‘르 리듬(Le Rythme)’. 라벨의 음악 속 작은 북의 소리가 ‘르 리듬’을 통해, 15개 이상의 선율 악기가 ‘라 멜로디’를 통해 구현된다. 라벨이 악기로 설계한 구조를 인간의 몸으로 옮긴 것이다.
초연의 주역은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두스카 시프니오스였다. 베자르는 1960년 여름, 네르비의 해변에서 물 밖으로 나오는 시프니오스를 보고 완전히 매료됐다. “비너스가 물결에서 탄생하는 것을 봤다”고 베자르의 동료 제르미날 카사도는 증언한다. 베자르는 시프니오스의 젖은 머리칼을 기억하며 ‘볼레로’를 만들었다.
두스카, 앙젤 알브레흐트, 그라치아 갈란테, 마야 플리세츠카야 등 18년간 이 역할은 ‘여성’의 것이었다. ‘붉은 원탁’은 여성들이 차지했던 셈이다. 그 아래 군무진 ‘르 리듬’은 남성들로 구성된다. 욕망의 대상 아래 욕망하는 자들이 무리지어 있는 구도다.
‘라 멜로디’의 춤은 음악이 구성한 총 18개의 스테이지에 따라 선율을 맞춰야 하는 만큼 복잡다단하다. 대충 ‘느낌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A주제로 시작해 바순과 Eb 클라리넷의 B주제, 오보에 다모레와 트럼펫, 플루트의 A주제, 두 개의 악기마다 뒤바뀌는 주제에 맞춰 1000개의 동작을 외워야 한다. 구소련의 프리마 발레리나인 아솔루타 칭호를 받은 플리세츠카야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하지만 베자르의 진두지휘 아래 그의 춤은 ‘볼레로’의 전설이 됐다.
누가 원탁의 주인인가…조르주 돈과 퀴어 혁명
베자르의 ‘볼레로’가 만든 가장 혁명적 순간은 1979년의 공연에서 등장한다. 베자르는 ‘라 멜로디’를 남성 무용수 조르주 돈에게 맡기기로 했다. 당대 최고의 발레리나들이 전유한 ‘여성적 관능’의 상징인 이 역할에 조르주 돈을 올린 이날은 발레계 성별의 독립기념일이었다.
조르주 돈(1947~1992)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무용수다. 1963년 열네 살에 베자르의 ‘20세기 발레단’에 입단, 그는 베자르의 페르소나이자 뮤즈가 됐다. 베자르는 돈을 위해 박티(1968), 니진스키, 신의 광대(1971), 골레스탄(1973), 우리의 파우스트(1975), 레다(1978), 아다지에토(1981) 등 수십 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돈의 몸은 곧 베자르의 언어였다.
1979년 1월, 파리 팔레 데 스포르에서 조르주 돈이 원탁의 주인이 됐다. 이와 함께 40명의 여성 무용수 ‘르 리듬’이 그를 에워쌌다. 디오니소스와 바카스 여신들을 연상케 했다. 6개월 뒤 파리 팔레 가르니에에선 40명의 남성 무용수가 ‘르 멜로디’가 돼 그를 에워쌌다. 젊은 신과 그를 숭배하는 남성들이었다.
베자르는 1979년 회고록 ‘타인의 삶 속 한 순간(Un instant dans la vie d’autrui)’에서 “이 발레가 더 이상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했기에(내가 이미 모든 것을 다뤘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다시) 생각했다”며 “‘왜 여자와 남자들을 바꾸지 않을까?’ 조르주 돈이 두스카와 타니아 바리의 뒤를 이었다. 발레의 의미가 바뀌었다”고 적었다.
프랑스 음악 비평지 ‘레뮤지카(ResMusica)’는 베자르의 당시 결정에 대해 “조르주 돈을 기쁘게 하려는 욕망을 넘어, 이 결정에는 중대하고 예견적인 혁명인 신고전 발레의 탈젠더화(dégenrer la danse néo-classique)가 있었다”고 평했다.
유혹과 도발, 에로티시즘이 내내 흘렀던 ‘관능의 춤’이었던 여성의 ‘볼레로’를 남성이 추자, 몸의 언어는 다른 방향을 향했다. 원초적 생명력, 억제할 수 없는 에너지, 군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새로운 키워드가 됐다. 같은 안무와 같은 음악이었으나 성별이 달라진 ‘춤’은 사회적 언어로 치환됐다. ‘라 멜로디’라는 개인과 ‘르 리듬’이라는 집단의 대립, 예술가와 군주의 대면, 자율성과 획일화의 대항으로 춤은 다시 읽혔다.
조르주 돈의 춤은 1981년 클로드 를루슈의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를 통해 전 세계가 지켜봤다. 기다란 갈색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휘날리고, 발가벗은 상반신에 흐르는 땀이 투명하게 반짝였다. 2025년 룩셈부르크 문화센터 네임엔스터(neimënster)의 연구자 줄리아 B. 라페리에르(Julia B. Laperriere)는 “이 작품의 음악적·안무적 구조는 남성성에 대한 성적 오르가슴을 노래하는 송가(ejaculatory ode to masculinity)로 볼 수 있다”며 “하지만 돈의 최면적 해석은 작품을 부인할 수 없이 퀴어하게 만든다”고 적었다.
베자르와 조르주 돈의 관계는 조금 특별하다. 예술적 협력 관계를 넘어 깊은 유대감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자르는 돈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손을 지켰고, 돈은 베자르의 어머니가 남긴 약혼반지를 끼고 생을 마감했다. 1990년대 초반, 전 세계 예술계를 휩쓴 에이즈의 비극이었다.
라페리에르는 “무용 역사 수업에서 볼레로를 배웠다. 하지만 그들이 말해주지 않은 것은 돈이 베자르의 연인이었고, 이 작품이 에이즈 위기의 한복판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라며 “무용사에서 이성애 규범(heteronormativity) 외부의 모든 관점은 거의 체계적으로 지워졌다”고 말했다.
조르주 돈은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한 다음 해인 1992년에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 모두 사망 당시 나이는 45세였다. 1997년 1월 베자르는 프랑스 파리에서 ‘삶을 위한 발레(Ballet for Life)’ 무대를 올렸다. 퀸과 모차르트의 선율이 교차한다. 의상은 지아니 베르사체가 디자인했다.
누가 원탁의 주인인가…한국인 남성 무용수 김기민
발레 ‘볼레로’는 탄생 65년 만에 세 번째 혁명을 꿈꾼다. 원탁의 주인을 ‘동양인 남성’에게 내어준 것이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이자 무수히 많은 발레리노의 ‘영웅’인 김기민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베자르 발레 로잔의 내한 공연 ‘볼레로’(4월 22~26일까지)에서 ‘라 멜로디’를 맡았다. 이 역에 한국인이 캐스팅된 건 김기민이 처음이다.
김기민은 “긴장이 돼 비행기 안에서 한숨도 못 잤다”고 떨림을 전했다. 공연을 앞두고 그는 스위스 로잔을 세 번이나 찾았다. 한번 시작하면 3시간 동안 물도 마시지 않을 정도로 몰입한 리허설은 그에게도 낯선 경험이었다. 팔을 들어 올리는 단 하나의 동작을 위해 쏟는 시간만 해도 한 시간. 베자르 안무 특유의 집요한 정확성 때문이다.
‘라 멜로디’를 거친 모든 무용수처럼 안무를 외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리듬이 340마디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김기민은 “‘30년을 춘 무용수도 순서를 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귀띔한다. 그는 라벨 ‘볼레로’의 오케스트라 총보를 통째로 외웠고 플루트부터 클라리넷, 바순 등 순서대로 나오는 모든 악기를 몸으로 익혔다. 음악을 통째로 외운 뒤, 각 악기와 동작을 연결해 안무를 기억하는 그만의 안무 암기 방법이다.
라벨이 설계한 기계적인 음악의 구조가 무용수의 몸에 이식됐다. 음악과 혼연일체 된 그는 지배하지도 유혹하지도 않는다. 우주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같은 음표를 받아내듯 버틴다.
베자르의 ‘붉은 원탁’은 단순한 무대 장치가 아니다. 고립된 개인과 열광하는 집단 사이의 경계선이자 사회적 위계질서가 전도되는 공간이다.
1928년 니진스카의 무대에서 탁자는 여성을 ‘관음의 대상’으로 올리는 받침대였지만, 베자르의 손을 거치며 ‘성(性)’의 구분이 사라진 ‘인간성’의 제단으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1979년 조르주 돈 이후, ‘볼레로’의 주역은 남성과 여성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다. 엘리자베트 로스(Elisabet Ros), 줄리앙 파브로, 최근의 마리 오하시(Mari Ohashi)에 이르기까지, 성별은 더 이상 ‘멜로디’의 성격을 규정할 수 없었다.
역할의 변화는 발레사에서 남성 무용수가 수행하던 전통적인 역할을 해체한다. 소위 ‘힘’을 상징하는 ‘리프터’(발레리나를 들어올리는 사람)으로의 역할을 벗어나 남성의 육체가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유연함과 관능’을 흡수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여성 무용수도 ‘강렬한 카리스마와 지배력’을 표출할 수 있는 틈이 마련됐다.
김기민의 ‘멜로디’는 거대한 운명(음악의 리듬)에 맞서는 나약하면서도 위대한 개인이다. 원탁 아래의 군무진은 주역을 숭배하기도, 압박하기도 한다. 그러다 끝내 집어삼킨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 집단의 긴장 관계를 드러내는 ‘볼레로’는 ‘가장 인간다운 춤’을 추구하는 인문학적 탐구의 연장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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